[인터뷰] 故 하지혜씨 오빠 “대한민국은 결국 ‘돈’과 ‘권력’”

[인터뷰] 故 하지혜씨 오빠 “대한민국은 결국 ‘돈’과 ‘권력’”

기사승인 2016-03-02 17:15:56

“대한민국은 결국 ‘돈’이고 ‘권력’이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일. 더벅머리에 상복 차림을 한 그가 이날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영남제분 청부살해 사건’ 피해자 고(故) 하지혜(사망당시 22세)씨의 오빠 하진영씨다.

하씨가 여동생을 잃은 지 올해로 14년. 지난달에는 어머니마저 동생 곁으로 떠났다. 가족의 시간은 아직도 과거에 멈춰있다.

2002년 영남제분 회장의 아내였던 윤길자(71)씨는 사위의 불륜을 의심, 이종사촌 사이인 여대생 하씨를 청부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은 계속됐다. 윤씨가 각종 병명으로 허위진단서를 끊어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윤씨는 2013년까지 차가운 교도소 대신 세브란스 병원에 자리를 깔고 사실상 호화 생활을 해왔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대중의 공분을 사자 윤씨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그의 호화 병실 생활을 도운 남편 류원기(70) 영남제분 회장과 윤씨의 주치의 박병우(58) 세브란스 병원 교수도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검찰은 두 사람을 구속기소 했지만 2심에서 류 회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박 교수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제라도 처절한 응분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던 윤씨 역시 소수의 모범수가 직업훈련을 받는 화성의 한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씨는 말한다.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다.”



다음은 하씨와의 일문일답.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설 연휴 4박5일간 어머니와 평창에 계신 아버지, 처자식들과 함께 즐겁게 지냈다. 며칠을 함께 있다 보니 어머니께서 ‘혼자 쉬고 싶다’고 하셨고 그래서 그 주 주말은 따로 찾아뵙지 않았다. 원래 매주 주말 항상 만났다.

정확히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1일 어머니 집에 가보니 일이 벌어져 있었다. 정신없이 발인까지 마치고 나니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마치 오랜 시간 홀로 방치돼 있다가 발견된 것처럼 기사나 났다는 것이다. 상황을 아는 친구들은 분노하고 나 역시도 씁쓸했지만, 기자분들이 그래도 강력 범죄 피해자라고 기사를 써 주셨는데 어떻게 하겠나.

어느 기사에는 어머니가 발견된 방 곳곳에서 소주병 있었다고 하는 데 아니다. 어머니는 그런 (지저분한) 꼴을 못 보시는 분이다. 술도 못 하신다. 옆에 딱 맥주 캔, 패트 소주 하나씩 있었다. 동생 생각에 괴로워 입에 못 대는 술을 사신 것 같다.”

-장례식장에 윤씨의 사위이자 이종사촌인 김모 전 판사가 왔었나

“안 왔다. 사건 이후 사과 한 마디 없던 사람이다. 지혜 장례식 때도,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연락 없었다. 그 사람 지혜 죽고 나서 10년간 판사직에 있었다. 현재 모 법무법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런 사람이 법조인으로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나? 자기 이모 돌아가셨다는 소리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연락이 없었다.”

-현재 윤씨는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곳에 있다는 것은 지난해 12월 정도에 알았다. 문득 궁금해져서 알아봤더니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고 들었고 그곳이 모범수들만 가는, 다른 교도소보다 상대적으로 지내기 편한 곳이란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여자를 다른 곳으로 보낼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선뜻 말할 수도 없었다. 더 억울해하실 것 같아서.

지혜 사망신고를 지난해 12월에 했다. 사망신고를 마치고 어머니께 윤씨가 화성으로 옮겼다고는 말씀 드렸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셨다. 그렇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직업훈련소라는 이름을 듣고 대충 느낌을 받으신 것 같았다. 최근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정확히 알고 계신다.

윤씨는 45년생이다. 상식적으로 그 나이에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훈련을 받을 수도 없다. 그곳에서 수감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2013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호화 병실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말이다. 지혜가 죽었을 때와 같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전과 달리 교도소에는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또 참을 수가 없다. 법의 단죄를 받아야 할 사람이 그렇게 지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따뜻한 곳에서 삼시 세끼 다 먹고…. 내 동생은 산속에서 공기총 여섯 발을 맞고 억울하게 죽었다.”

-영남제분이 한탑으로 이름을 바꿨다.

“백 퍼센트 나쁜 이미지 쇄신하려는 짓 아니겠나. 그럴 줄 알았다 싶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나중에 보니 대표이사도 바뀌었더라. 근데 류씨가 여전히 최대 주주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다.

2013년 시끌시끌하게 법정 싸움 한 후 잠잠해지니 사명을 바꿨다. 그럴 거라는 짐작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사건 발생 후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인다“

“진정으로 끝내고 싶다. 진짜 이제는 끝을 내고 싶다. 사건 자체는 개인의 안타까운 범죄 피해지만 사실 이건 가진 자들이 돈으로 법을 기만하는 단적인 장면이다.

윤씨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년간 법 위에서 호화생활하다가 언론에 알려지니까 잠깐 피하고 잠잠해지니 또 이런 식으로 꼼수를 쓰고 있다. 이게 어디 그 여자 혼자 하는 짓이겠나. 형 집행정지해준 검사나 도와준 남편, 의사도 교도관들도 마찬가지다. 동생사건 하나에 대한민국의 추잡한 부조리가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고 세상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지만, 또 어느 순간 약하고 돈 없고 ‘빽’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강력범죄 피해자들의 최후는 집안파탄이다.

14년이 지났다. 이제는 동생의 명예회복이나 한풀이를 원하는 게 아니다. 제발 좀 이 사건을 보고 높은 사람들이 각성하고 더러운 짓을 안 했으면 하는 바람만 남았다. 정말 끝내고 싶다.”

-어떻게 해야 끝이 날까.

“글쎄. 돈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뭐라 한다고 움찔하기나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본다.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문이다.”

민수미 기자 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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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미 기자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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