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수백명 피해자 발생, ‘보건당국’ 책임이 커

가습기살균제 수백명 피해자 발생, ‘보건당국’ 책임이 커

기사승인 2016-04-20 00:36:55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지난 2011년 대한민국에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임산부와 영·유아 140여명이 원인 미상의 폐손상으로 사망했고, 이러한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가습기 살균제’였기 때문이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직접 피해자는 총 221명으로 늘어났지만, 잠재적 피해 규모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수만 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듯 세균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살균제가 사람을 죽이게 한 치명적인 물질이라 것이 밝혀지며 전 국민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은지 정확히 5년 만에야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은 19일 옥시레킷벤키저의 인사 담당인 김모 상무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수많은 사람을 사망케 한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5년 만에 특별수사팀을 꾸려진 것이다.

당시 사고 원인을 조사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이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폐손상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다국적 기업 옥시레킷벤지커의 '옥시싹싹'이며, 롯데마트의 PB 제품 등이 지난 2005년부터 PHMG를 원료로 사용해 판매하다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판매를 중단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했으며, 폐질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발표했다. 문제는 당시 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를 판매한 업체조차 정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은 체로 사건은 유야무야 흘러갔다.

정부가 책임 회피를 이어가는 사이 가습기살균제로 폐가 굳어 태아를 품은 임산부와 영유아들이 수없이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살인 살균제를 제조한 기업들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졌을 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옥시 등 업체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한 것이 전부다.

유족들은 질병관리본부 결과 발표해 분개했고,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10곳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검찰은 일반 형사사건으로 보고 검사 1명에게 수사를 맡겼고 이듬해 사건을 시한부 기소중지했다. 피해사례 300여건에 대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옥시와 롯데마트 등 6곳을 압수수색했고 수사를 재개했다. 그런 사이 또 다른 사망환자들이 발생했다.

이후에도 제조사들은 혐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 대학에 의뢰해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무해하다는 입증 자료를 받았으나, 이 마저도 일부는 조작된 연구라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검찰은 연구진을 최근 소환해 보고서가 당초 실험 결과와 달라진 경위를 집중 조사했다. 특히 연구진이 실험 결과를 왜곡해서 만든 보고서를 사측에 넘긴 것인지 아니면 사측이 보고서가 넘겨진 이후 조작했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연구팀 보고서에는 2011년 조사위원회가 실시한 것보다 낮은 PHMG 공기 중 농도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가 반영돼 유해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문제로 지목한 가습기살균제는 옥시의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롯데마트 PB제품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PB제품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세퓨 가습기 살균제' 등 4개 제품이다. 이들 제품에서 폐 손상 유발 물질이 포함됐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옥시 이후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등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이어 "잠재적 피해자가 29만명에서 227만명까지 추산된다. 현재 신고된 1528명의 피해자는 최대 0.52%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2015년 접수된 752명에 대한 3차 조사도 3년이나 질질 끌고 잇다. 이렇게 되면 사건의 실체가 묻히고 민형사상의 소멸시효가 거의 지나게 돼 사실상 제조사들의 책임을 덮어주게 된다"며 "민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나기 전에 검찰청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문제를 철저히 파헤쳐 달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주요 대상은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거나 판매한 기업이다. 하지만 사건 해결 방식이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가 된 살균제들을 공산품으로 규정해 허가를 내준 곳이 바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이들 살균제들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하기로 결정됐지만,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심각한 성분의 살균제를 제조한 기업에도 있지만, 이를 허가한 규제당국의 허술함에도 있다.

한편 검찰은 이번주 중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관계자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newsroo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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