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민수미 기자] 짧은 경력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꽤 흥미로웠던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취재입니다. 2011년 산모들이 원인 미상의 중증 폐 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사태. 사망자 절반 이상이 영유아인 전대미문의 사건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들은 여전히 책임에서 자유로웠던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기사를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회성 기획으로 시작한 기사는 의도치 않게 10여개의 꼭지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해를 넘겨 지금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취재 중입니다.
최근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관련 회사들은 하나둘씩 너무 늦어버린 사과를 하느라 바쁩니다. ‘이제야’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나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취재 당시 기업들이 보인 태도와 비교해보면 실소가 나올 지경입니다.
피해자들이 가장 답답해했던 건 가습기 제조·판매 기업들과의 소통이었습니다.
취재 당시 피해자들은 기자에게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회사를 찾아가도 만나주지를 않는다.” “전화해도 사람을 돌려가며 응대할 뿐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곳이 없다.”
이들 회사와 소통이 안 되는 건 기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취재 요청을 하거나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유선으로라도 질문할 때면 다들 짠 듯이 “일단 메일로 (질문) 보내주시겠어요?”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질문들을 상세히 적어 보내면 돌아오는 건 상투적인 대답이었죠. 물론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피해자 530명 중 403명이, 사망자 143명 중 70%가 사용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판매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답변입니다.
기자는 피해자들과의 연락,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의 위해성 인정, 과거 “옥시 제품과 폐 손상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측의 입장 변화, ‘인도적 기금’ 명목으로 내놓은 50억과 관련된 문제 등 8개의 질문을 메일로 전송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게 전부입니다.
“공정하고 합당한 해결방안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저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또한, 모든 사안이 아직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사건의 인과관계를 떠나 고통 받고 있는 환자나 가족분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드리는 것도 저희의 매우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인도적 차원에서 50억원(약 300만 파운드)의 기금을 조성하고 환경부에 기탁한 바 있습니다. 해당 기금이 가급적 신속히 환자 및 가족 분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기업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다음은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롯데마트’의 입장입니다.
“우선,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다만, 본 건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 답변이 어려운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사는 소송 결과에 따라 피해자 구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자체 PB상품 ‘가습기 클린업’을 판매한 ‘코스트코’는 질문지를 보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본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변도 내놓을 수 없다”며 통화를 끊었습니다. 1시간여가량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받은 ‘귀한’ 답변입니다.
회사들의 이런 태도가 사실은 꽤 정성스런 대응이었다는 걸 당시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취재가 거듭될수록 이들은 전화를 피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많은데 왜 우리한테만 이러느냐”는 한 회사 관계자의 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난해 12월, 기자는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를 아이와 함께 사용하다 피해자가 된 가족이 각 회사에 전화를 걸다 봉변을 당한 일을 기사화했습니다.
피해자가 원한 것은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 유해화학물질 CMIT(클로로 메틸이소티아졸린)와 MIT(메틸이소티아졸린)에 대한 호흡독성검사 결과와 이를 안전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의 판매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물품을 환불 해주면 되겠냐’ ‘그걸(CMIT 흡입 실험 기준자료) 알아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줬죠.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한 각 기업의 어설픈 대응 방식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애경의 경우 홍보 관계자는 “절대 그런 적 없다.” 법무팀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며 자체 입장 정리도 하지 못한 상태였고 ‘SK케미칼’은 홍보 관계자가 “그럼 우리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면 될까요?”라고 기자에게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뒷북 사과를 받지 못하겠다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입장이 십분 이해 갑니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떼를 쓰던 친구가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자 마음이 없는 사과를 건네는 그림이 떠오르는 건 그저 우연일까요.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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