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곡성’, 집요함이 빚어낸 ‘나홍진’이라는 장르의 완성

[쿡리뷰] ‘곡성’, 집요함이 빚어낸 ‘나홍진’이라는 장르의 완성

기사승인 2016-05-04 17:41:55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영화다. ‘곡성’이 156분의 러닝타임동안 만들어내는 으스스한 분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전개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관객의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기괴한 모양새의 잔상과 비명소리, 음습한 기운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체 나홍진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걸까.

영화는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을 비추며 시작된다. 곡성(哭聲)이 떠나지 않는 사건 현장에 도착한 종구(곽도원)는 문에 들어서고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로 향해 있는 현장에서 종구는 온몸에 새까만 두드러기가 나고 흰자를 보인 채 실성한 가해자의 모습에 놀란다.

용의자는 쉽게 붙잡혔다. 하지만 살인 사건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각각이다. 경찰은 병원 검사결과를 근거로 집단으로 야생 버섯에 중독 돼 벌어진 일이라고 정리한다. 마을에 낯선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나타난 이후 이런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떠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지인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한 종구는 산을 헤매며 그를 직접 찾아간다. 그 이후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에게 용의자들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자 다급해진 종구는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여 굿판을 벌인다.

‘곡성’이 무서운 이유는 알 수 없는 일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을 마주한 주인공 종구는 경찰이 제시한 야생 버섯 중독설에 납득하지 못하는 대신 외지인의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스스로 사건의 동기를 추측하고 판단까지 내렸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무속 신앙과 종교의 힘을 동원해도 종구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끝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헤맨다. 왜 자신의 딸이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지 물어도 납득할만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가 막을 내려도 관객의 혼란스러움은 정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고심 끝에 선택된 것으로 보이는 결말은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영화의 앞뒤는 맞추는 대신 끝없이 관객을 현혹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포스터에 적힌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문구는 ‘곡성’을 관람하는 관객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문이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통해 악의 없는 살인과 그 피해자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확고히 펼쳐냈다. 나 감독은 데뷔작 ‘추격자’에서는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살인범의 이야기를, 전작 ‘황해’에서는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누군가에 대한 원한이나 악의로 저지른 살인이 아닌 이유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의 사연과 피해자의 이야기를 풀어온 것이다. 심지어 ‘곡성’에서는 살인자의 정체마저 불분명하다.

나홍진 감독은 자신의 세계를 완성할 배우들을 9개월 동안 찾았다. 그 결과 주연부터 조연까지 다양한 배우들이 ‘곡성’ 내에서 살아 움직이며 영화를 완성했다. 그동안 주로 강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곽도원은 딸을 구하기 위해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는 강한 모습부터 주저앉아 눈물 흘리는 무력한 모습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펼쳐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다. 짧은 분량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천우희와 신들린 굿판 연기를 펼친 황정민도 영화의 팽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아역 배우의 꼬리표를 떼고 성인 배우들과 맞선 김환희의 연기는 트라우마가 남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놀랍다. 오는 12일 개봉. 15세 관람가 bluebell@kukimedia.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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