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하루 평균 6~7개 화학용품 사용, 유해물질 노출 빈도 증가

한국인 하루 평균 6~7개 화학용품 사용, 유해물질 노출 빈도 증가

기사승인 2016-06-02 00:48:55

[쿠키뉴스=장윤형 기자] “내가 어릴 적엔 ‘자연주의’가 살아 숨쉬고 있을 때였어. 우리 땐 모든 것을 자연으로부터 얻었어. 1960년대만 해도 살균제라는 개념도 없었어. 그나마 몸을 씻을 때 쓰던 비누가 전부였지. 당시엔 ‘똥비누’(새까만 색의 비누라서 불려진 별칭)라는 것으로 빨래를 했어. 어머니는 주로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셨어. 그래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어. 세균이라는 것도 우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지나치게 청결한 것도 문제야. 요즘 세대가 사용하는 제품들 중 화학용품이 아닌 게 없잖아.”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살균제’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1960년대를 겪어 온 김혜자(65·가명)씨가 경험한 어린시절 속 생활환경은 2016년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김씨의 할머니가 금니 청결을 위해 ‘가루치약’을 처음으로 사용하던 시기였고, ‘샴푸’가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를 닦을 때도 소금을 사용했다. 그렇다보니 수질오염 우려도 없었다. 김씨는 “주방세제나 등의 화학제품들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일상에서 큰 불편을 겪지는 않았다”며 “쌀뜨물이나 소금으로도 충분히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생활환경에서 세균(박테리아)과 곰팡이를 100% 박멸하지 않으면 당장 심각한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로인해 건강하고 청결한 생활을 위해서 실내 공기를 방향제로 채우고, 빨래를 할 때도 반드시 살균제로 세균을 박멸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겼다. 살균제가 정작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기업의 살균제 마케팅에 덩달아 편승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현대인의 일상생활 풍경은 어떨까. 시민 1명 당 하루평균 5∼6개의 화학용품을 사용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한 20대 여성의 일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직장인 김지호(가명)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클렌저로 세안을 하고, 항균작용 효과가 높다는 A사의 치약으로 양치질을 한다. 세균을 99.9% 박멸한다는 B사의 구강청결제도 사용한다. 출근 전 김씨는 로션, 자외선차단제 등의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다. 출근할 때 이용하는 자가용에는 악취를 없애고자 방향제를 뿌린다. 이후 회사에 도착한 김씨는 책상 위의 먼지를 닦기 위해 물티슈를 사용한다. 손에 세균이 많다는 생각에 손세정제를 사용해 손을 닦고, 이 마저도 부족해 손소독제로 손을 청결히 한다. 김씨가 매일 하루에 사용하는 화학성분이 함유된 제품이 평균 10∼11개에 달한다.

수년 전부터 일상생활 속 생활용품의 대다수가 인체 건강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치약이나 화장품, 살균제 등을 비롯해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화학용품에 포함된 유해성분이 몸속에 흡수되면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는 근거자료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불을 지핀 것이 바로 수많은 임산부와 영·유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부터다. 최대 가해 기업으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만든 살균제는 당시 공산품으로 분류됐다는 이유로 인체 유독성을 검증하기도 전에 국가표준(KS) 인증까지 받아 판매됐다.

생활 속 화학용품 중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이 많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치약이나 화장품 등에 포함된 유해성분이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논란도 있었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시판 치약의 약 3분의 2 가량에서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트리클로산이 함유됐다는 내용이 발표되기도 했다. 트리클로산은 해외에서도 유해성분이라고 판명된 물질이다. 미국은 이 성분이 유해 성분임을 인지하고 법적 조치를 취했다. ‘화장품’에 함유된 방부제 파라벤도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0월 화장품 보존재로 사용되고 있는 다섯 종류의 파라벤 성분의 사용을 금지했다. 영국에서는 보존제가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면서 우리 몸에 내분비 장애 등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밖에도 물티슈에 함유된 ‘세트리모늄브로마이드’는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로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 측은 “유럽 등의 국가는 정부 차원에서 발암물질 성분이 함유된 리스트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게시해 소비자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 물질들이 우리 생활에 쓰이지 않도록 장려한다면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상황도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P&G가 판매하는 탈취제 ‘페브리즈’에 폐 손상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탈취제 제품에서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돼 사용이 금지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제품 회수 조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모기나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뿌리는 살충제, 에어컨 살균제, 향초 등도 검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최근 화장품(로션, 데오드란트 등)의 미생물 번식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부제 일종인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이 인체에 유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4월 5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EU 내 모든 화장품에 MIT 성분 사용금지 규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덴마크는 면도크림이나 샴푸와 같은 세정제품에까지 MIT 사용금지 규제 범위를 넓히려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덴마크 오덴세대학병원 피부과 제이콥(Jakob Torp Madsen) 박사는 “MIT가 접촉성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우리 주위에서 퍼진 공포증이 있다. 바로 화학물질 포비아(Phobia, 공포증)이다. 일각에선 “지나친 화학용품 사용이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다”며 천연제품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은 “인체는 수만 년의 진화 과정 내내 장내 미생물과 공존하면서 면역체계를 발달시켜왔다. 우리 몸과 주변 환경에서 미생물을 싹싹 몰아내고서는 건강할 수 없다. 수많은 화학제품으로부터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50년 전과 달리 현대사회에서 화학용품의 사용은 불가피하다”며 “기업이 만든 해당 화학성분이 유해물질인지를 정부가 철저히 검증하고, 매일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 위험성(Risk)에 대해 충분히 소비자들에게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newsroo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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