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차림에 마스크를 낀 150여명의 학생들이 회의장 양 옆으로 빙둘러서있었다. 지난 12일 부실의대, 비리의대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서남대학교 의과대 학생들이 성명서 발표를 통해 학교와 교육당국에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등록거부, 집단휴학도 불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학생들이 맞닥뜨린 안갯속 현실과 각 언론사들의 취재 열기가 맞물려 현장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동안 서남의대는 수련병원 지정으로 인한 몇 차례 혼란을 겪어왔다. 2010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았으며, 2011년에는 수련병원이었던 남광병원이 평가기준에 못 미쳐 수련병원을 예수병원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예수병원의 교육수련 환경도 변변치 않아 명지병원과 협약을 체결해 서남의대 학생들은 지난학기까지 명지병원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문제는 올해 6월, 명지병원도 수련병원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임시이사회가 다시 예수병원을 수련병원으로 지정하며 불거졌다. 여러 차례의 위기에도 잠잠했던 학생들이 “또 다시 도돌이표로 돌아간 상황이 아니냐”며 “당장 다음 학기부터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가운데 서남대 구재단은 서남의대를 폐과하는 내용을 교육부에 제출해 폐과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의대가 폐과되면 학생들은 타 의과대학으로 편입된다. 성명서 발표에서 강선구 서남의대 학생회장은 의대 재학생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90% 이상이 폐과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의학도서관이나 교육시설, 심지어 교수진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서남대에서는 앞으로도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서남대가 위치한 전라북도 남원시의 지역사회는 서남의대 폐지를 가만두지 않을 전망이다. 서남의대가 폐과되면 지역경제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대학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공고하다. 이환주 남원시장은 13일 국회를 방문해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에게 지역여론을 전달하며 ‘서남의대 정상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서남의대 폐지론이 나온 사이 목포와 순천과 같은 주변지역에서는 의대 신설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목포시는 목포대의 의대 단독유치 선언과 함께 시민들의 서명운동까지 가세했다. 또한 순천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13일 ‘국립보건의료대학과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 설립 법안’을 제출해 순천시의 의대 유치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12일 진행된 성명서 발표에서 강선구 학생회장은 각 지역의 의대 유치전에 대해 “서남의대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교육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의 바람과 달리 서남의대 문제는 갈수록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성명서 발표가 끝나고 마스크를 벗은 학생들의 얼굴은 생각보다 앳됐다. 긴장이 풀렸는지 좀 전의 무겁던 분위기와는 상반된 떠들썩한 모습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멋쩍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지나고 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른들의 이권다툼에 애꿎은 학생들 얼굴만 하얗게 질려가고 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