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재학생들이 나흘째 대학 본관을 점거했다. 학생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책을 펴고 독서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설립하려는 대학 측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31일 서울 서대문구 이 대학 본관에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건물 1층과 계단을 점거 중이다. 학생들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건물을 지키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이번 농성은 지난 28일 오후 2시에 열린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교육부 지원사업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폐기하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28일 회의에 참석했던 평의원 교수와 교직원 5명을 본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이들 교수와 교직원들은 46시간 만인 30일 경찰의 제지로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학생 10여명이 병원에 실려갔고, 현장에서 7명 정도가 응급조치를 받았다.
최근 들어 대학의 학내 사태에 경찰력이 투입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교내 경찰력이 투입된 것과 관련해 학교 측과 경찰의 입장 설명이 달라 논란도 일고 있다.
관할 서대문경찰서는 갇힌 사람들로부터 23차례 개인적인 신고와 학교 당국의 공문을 통한 시설 보호 및 구조 요청이 있어 경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서대문서는 "이화여대로부터 28일 오후 10시55분께 시설 보호를 요청하는 총무처장 명의의 공문을 받았다"며 "29일 오후 6시22분에는 총장이 최종 결재한 시설보호 요청 공문을 받았고, 30일 오전 11시15분 병력 투입 직전에는 정보과장이 총장과 통화해 경력 투입 요청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화여대는 앞서 "갇혀 있던 사람들이 구조요청을 위해 개인적으로 112에 신고했고, 학교 차원의 경력 요청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이 일자 "시설 보호와 구조 요청을 학교 차원에서 한 것은 맞으나 경찰력을 투입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며 "이미 본관 인근에 당도한 경찰이 구조를 위해 경력 투입이 불가피하다고해서 이를 수긍한 것"이라고 재차 해명했다.
학생들은 "총장 면담이 낮 12시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 시간에 학생들을 찾아온 것은 1천600명의 경찰이었다"며 항의했다.
학생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는 지금껏 무수히 반복돼온 최경희 총장 체제의 '불통 시스템'이 낳은 파행"이라며 "학교는 단과대를 개설하는 중대한 사안에서 주요한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견을 한번도 수렴하지 않았고, 한 교수는 '4년 후 졸업하는 학생이 무슨 주인이냐?'는 소리도 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우리는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본관에서 농성을 이어 나갈 것"이라면서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최 총장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와 단과대 학생회는 학교를 규탄하는 성명을, 한양대·고려대·경희대 총학생회 등 타 대학 학생회 일부는 이화여대 학생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대학 측은 "전날 5명이 본관 밖으로 나온 후 최 총장이 대화하기 위해 만나자는 의사를 전했으나 학생들이 이견이 있다며 만남을 미뤘다"며 "제대로 대화하기 전에 농성부터 시작한 터라 서로 의견을 나눠야 학생들이 원하는 바 등 본질적인 부분을 파악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화여대는 5월 교육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참여할 대학을 두 번째로 모집할 때 신청해 이달 초 동국대, 창원대, 한밭대와 함께 선정됐다.
이에 따라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고 미디어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뉴미디어산업전공과 건강·영양·패션을 다루는 웰니스산업전공 등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과대 정원은 150여명이며 2017학년도부터 신입생을 선발한다.
갑작스럽게 단과대 신설 소식을 접한 상당수 학생은 기존 학생과 신입생의 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미래라이프대학 학생들도 수준 이하의 교육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크게 반발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