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하정우 “감독님은 아마 개밥을 직접 먹어보셨을 거예요”

[쿠키인터뷰] 하정우 “감독님은 아마 개밥을 직접 먹어보셨을 거예요”

기사승인 2016-08-12 14:20:07



배우 하정우는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관객들을 찾아왔다. 2013년 여름 개봉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시작으로 2014년 영화 ‘군도’, 2015년 영화 ‘암살’까지 하정우의 작품은 매년 여름 극장가에 걸려 관객들을 모았다. 영화의 흥행은 물론 작품성까지 보증하는 그의 영화를 두고 ‘하정우 장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하정우가 출연한 재난영화 ‘터널’은 개봉 첫날부터 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을 예고했다.

서울 팔판로 한 카페에서 하정우를 만난 지난 10일은 ‘터널’의 개봉 첫날이었다. 이미 ‘터널’의 예매율이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인지 긴장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정우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말투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다가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는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터널’이 ‘더 테러 라이브’와 비교되는 것에도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는데 1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다른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터널 안의 좁은 공간뿐 아니라 바깥의 스토리가 있어서 좋았어요. 달수 형의 구출기도 있고, 두나의 드라마도 있더라고요. 관객들도 ‘터널’을 보시면 처음엔 ‘더 테러 라이브’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계속 보면 전혀 다른 결의 영화라는 걸 아실 수 있으실 거예요.”

하정우의 말처럼 영화를 본 이후에는 ‘더 테러 라이브’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 멧 데이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다. 기존 한국 재난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주인공의 낙천적인 모습 때문이다. 주인공 정수는 생존을 위협받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좌절하기보다 희망을 찾으며 상황을 긍정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그런 태도가 얼핏 실제 하정우와도 비슷해 보여 그가 캐릭터에 영향을 미친 건 아닌지 궁금했다.


“영화 속 긍정적인 시선은 김성훈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에요. 고통을 나누기보다 고통을 빨리 극복하고 삶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은 거죠. 저도 주인공이 긍정적이어야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터널 안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상황이 안타깝고 슬프더라고요. 안타까운 상황에서의 긍정적인 모습이 눈에 띄면 잔상이 크게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저도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들면 술을 마시면서 자꾸 떠올리기 보다 좋은 생각하면서 빨리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관객들은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볼 때 습관처럼 그가 무언가를 먹는 장면을 찾는다. 뭘 먹어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알려져 ‘하정우=먹방’의 공식이 성립할 정도다. ‘터널’에서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터널 안에서 생존을 위해 생크림 케이크와 개밥을 아껴가며 먹는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하정우는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촬영 전에 감독님이 평소 먹지 않는 케이크가 뭐냐고 물었어요. 생과일, 생크림 케이크는 잘 안 먹는다고 말했더니 그걸로 결정했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감독님이 작은 것에서부터 아이러니를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 정수 딸이 키우고 싶어 하는 강아지를 털 날린다는 이유로 싫어해요. 그런데 결국 강아지와 같이 생활하게 되죠. 만약 주유소에서 할아버지가 물병을 안 줬다면, 우연히 기름을 가득 채우지 않았다면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요. 그런 식으로 감독님은 ‘터널’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러니한 상황을 심어놓으셨어요.”


‘터널’에서 하정우가 처한 상황은 열악하고 좁다. 폐쇄공포증을 느낄만한 답답함 속에 관객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하정우의 유머다. 하정우는 대본과 애드리브를 넘나들며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강아지와 함께 찍은 장면은 거의 애드리브였어요. 하지만 개밥을 먹어보고 ‘너네는 간을 안 하는구나’라고 말하는 대사는 애드리브가 아니었어요. 감독님의 센스가 돋보이는 대사였죠. 아마 감독님이 호기심이 많으셔서 직접 개밥을 먹어보셨을 거예요. 또 ‘꿈꿨어요’, ‘집에 왔다’, ‘나쁘지 않아 클래식. 마음에 안정을 주네’ 등은 모두 애드리브였죠.”

하정우는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완전히 다른 방식의 유머를 전달한다. 배우 하정우의 유머가 점점 관객들에게 익숙해지는 느낌이라면, 감독 하정우의 유머는 아직 낯선 느낌이 든다. 하정우는 이런 차이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한다”면서 “다음 영화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제 세 번째 작품은 관객들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감독한 영화 ‘롤러코스터’는 저 혼자 즐기려고 만든 영화에 가까워요. 관객이 유머를 느낄 시간을 주지 않고 너무 빠르게 진행됐죠. 나이를 먹으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처럼 영화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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