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제쳐두고 사교육부터… “시기 놓치면 감정제어 힘들어”

인성 제쳐두고 사교육부터… “시기 놓치면 감정제어 힘들어”

기사승인 2016-09-21 06:26:26

[쿠키뉴스=김성일 기자] 올해 5살 민수(가명)는 일주일 간 7명의 학습지 교사와 마주한다. 한글과 수학, 영어, 모형놀이 등을 매일 2~3가지씩 배운다. 직장생활로 여념이 없는 민수 엄마는 “방문 교사들에게 엄마를 대신해 아이와 재미있게 학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에 호기심을 보이던 민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을 잃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심지어 학습지 교사를 때리기까지 했다. 민수는 어느새 귀를 닫고 엄마와도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한다.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조기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영·유아기 시절부터 인성을 쌓아갈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 맞춰진 교육 시스템 안에서 부모들은 ‘명문대 진학이 곧 성공’이라는 공식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른 나이의 아이들은 등을 떠밀려 학습 현장으로 내몰린다. 전업주부인 최미수(가명·34세)씨는 “무엇인가를 접하며 흥미를 알아가는 유아기야 말로 다양한 직·간접 교육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국내 영·유아의 75% 가량은 사교육을 받고 있다. 그 규모는 지난 2014년 이미 3조 원대를 돌파했으며,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증가폭의 10배 수준으로 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들은 평균 3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다”면서 “어린이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간표대로 움직였던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를 못하거나 쉽게 신경질을 내고 규칙을 지키지 않기도 한다”고 전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한국아동패널 2008~2014 자료 심층 분석 연구’에 실린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이 만 5세의 문제행동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사교육에 노출된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스트레스가 심하며 이는 불안이나 우울, 공격 등의 문제행동으로 이어졌다.

보고서는 “영·유아기 사교육은 아동보다 부모의 주도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고,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자극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심성경 원광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가 학습 스트레스로 인해 왜곡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며 “인성을 바탕으로 한 내재적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유아시절 학습 스트레스에 치인 아이들은 실패감을 맛보고 이후 학습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미성숙한 뇌에 부담이 이어지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사그라지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유아기의 기억까지 되짚어 반감을 표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서유헌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원장은 “유아기에는 뇌발달상 지식교육보다 적기교육 즉,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인성·창의교육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시기를 놓치면 감정조절 능력 등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며 “적기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 살인, 묻지마 범죄, 각종 비리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ivemic@kukinews.com

김성일 기자
ivemic@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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