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규봉 기자] 고(故) 백남기 사건과 유사한 사례라고 경찰이 제시한 유일한 사건도 재판 결과에서 ‘병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검을 하더라도 결말은 같다는 얘기다. 병사에 이르게 한 최초 원인이 먼저라는 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서울 은평갑) 의원이 4일 경찰과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백남기 사건과 유사 부검 사례라고 제시했던 단 1건의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 법원이 병사를 인정하지 않고 피고인의 폭행이 사망의 원인이었다고 인정했다.
유사사례는 지난 2014년 강원도 원주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는 자택에 침입한 절도범을 폭행 후 의식을 잃고 9개월 동안 입원해 있다가 폐렴으로 사망하게 됐다.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2016도2794)은 올해 5월 유죄를 확정했다. 2심을 담당했던 서울고등법원 춘천 제1형사부는 판결문(춘천2015노11)에서 “직접적 사인은 폐렴(이라할지라도), 폐렴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키지 않는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원인을 제공한 피고인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한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폐렴의 발병 원인은 빈혈 및 두부 손상 후유증에 따른 경막하 혈종이다. 그런데 피해자처럼 두부 손상을 입어 의식불명 상태로 장기간 입원 및 수술 치료를 받는 환자는 출혈 자체는 나아지더라도 두부 손상에 따른 의식 저하로 폐렴 등의 합병증이 흔하게 발생하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잦아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경우라 볼 수 없다”며 “폐렴이 피고인이 가한 외상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절할만한 독립적 사망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술을 채택했다.
서울대병원 진단서에서 故 백남기 씨 역시 직접 사인은 심폐정지이며, 그 원인은 급성신부전증이고 다시 그 원인은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족인 백도라지 씨는 병원으로부터 “계속 약물을 쓰고 투여량을 늘리면 아무리 건강하신 분도 뇌가 회복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다발성 장기부전이 올 수 밖에 없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경찰이 유사사례라고 제시한 사건도 병사로 인정되지 않았다. 백남기 사건도 마찬가지로 ‘병사’가 될 수 없는 셈이다.
박주민 의원은 “현재 논란처럼 진단서상 병사이든 외인사이든 법원의 판단은 결국 사망의 원인을 제공한 경찰의 책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면서 “결과가 뻔한데도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며 유족에게 또 다시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대 의과대학 재학생은 지난 달 30일 고 백남기 농민 사인이 ‘병사’로 표시된 것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고, 하루 뒤인 1일 서울대 의과대학 동문들이 답변 형식의 대자보를 붙였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외인사임이 명확한 백씨의 죽음에 대한 잘못된 진단서로 의사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저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면서 “의사들조차 해당 사망진단서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에 근거한 부검영장을 신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환자들에게 의사들을 믿고 스스로를 맡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사망진단서가 오류를 범하게 됐다면 의사와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국민 보건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참된 의료인이라면 응당 침묵하지 말고 자신의 직업적 양심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ck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