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전미옥 기자] #한동안 콧물감기로 고생하던 버스운전기사 A씨는 아침부터 감기약을 털어 넣고 운전대를 잡았다. 유난히 한적한 교통상황에 긴장이 풀린 데다 감기약 기운이 올라온 탓인지 A씨는 꾸벅꾸벅 졸다 그만 급정거를 하고 말았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없는 상황. 문득 운전 시에는 약물복용을 하면 안 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A씨의 경우처럼 감기약을 먹고 운전해도 되는 것일까.
감기약을 비롯한 진통제, 멀미약과 같은 의약품은 가정상비약으로 약국,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의약품 복용 시 운전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서민석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약품을 복용했을 때에는 되도록 운전을 삼가는 것 좋다”고 말한다. 의약품에 함유된 성분이 몸에 퍼지면서 졸음을 유발하거나 주의력을 떨어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일례로 감기약 등에 포함된 항히스타민성분은 졸음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의약품마다 다르지만 몇몇 약제의 경우 졸음, 긴장완화, 어지러움, 착란 등을 유발하므로 운전 직전에는 복용을 자제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최근 현대해상화재보험 산하 교통기후환경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의약품 중에서도 당뇨, 고혈압, 치매약이 가장 안전 운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의약품 중에서는 비염치료제의 영향이 가장 컸고 종합감기약, 피임제, 진통제가 그 뒤를 이었다. 당뇨, 고혈압, 치매약과 같이 꾸준히 복용하는 의약품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밝혀진 만큼, 여러 종류의 약을 중복으로 복용할 시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석 교수는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과 원래 복용하는 처방약을 함께 복용하게 되면 반응이 크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전자들도 의약품 복용과 운전의 연관성을 느끼고 있었다. 30∼50대 운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운전 전에 의약품을 복용한 경험자 가운데 76.2%가 ‘운전에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은 의약품이 운전에 미치는 영향으로 졸음현상(52.3%), 집중력 저하(20.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운전 시 일반의약품 복용은 위험할 수 있지만 처벌사항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자동차등의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 외에 과로, 질병 또는 약물(마약, 대마 및 항정신성의약품과 그 밖에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것)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등을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운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또한 A씨와 같이 운전기사일 경우 자격정지 처분이 더해진다.
고성호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안전본부 자격관리처 사무관은 “운전기사가 일반의약품 마약과 항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고 운전했을 때에는 버스운전기사는 2년, 택시운전기사는 20년 동안 자격이 정지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민석 교수는 “의약품에 대한 반응에는 사람마다 편차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의약품 복용 전에는 항상 의료진과 상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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