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주 친밀한 폭력’

[신간] ‘아주 친밀한 폭력’

기사승인 2016-12-02 15:58:06


[쿠키뉴스=이준범 기자] 한국 여성 대부분은 일생에 적어도 한두 번 이상 애인이나 남편에게 폭력 피해를 당한다. 2009~2015년 남편 혹은 애인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위기에 놓여 기사화된 여성은 모두 1051명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계산해도 평균 2.4일에 한 명씩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는 여성 중 실제로 얼마나 많은 수가 사망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통계 자료도 없고, 자살, 사고사, 실종으로 처리되는 죽음이 많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끔찍하게’ 죽거나, 맞아서 죽기 전에 남편을 죽여야 비로소 ‘보이게’ 된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의 가치에 대한 정의는 ‘객관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가치 판단에 의한 선택의 문제를 함의하며, 그러한 선택의 원리에는 권력 관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 폭력’은 여성 운동이 활발할수록, 사회적 대책이 마련될수록 증가하는 속성이 있다. 일반적인 사회 현상과는 달리 해결 노력이 활발할수록 문제가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아내 폭력’이 없었던 문제가 아니라 다만 보고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성 운동의 활성화는 피해 여성들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각과 용기를 준다. 이처럼 ‘아내 폭력’은 특정한 관점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사실’로 인지된다.” (p.71)

‘아주 친밀한 폭력’은 지금 한국 여성이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가장 적나라하고 고통스러운 보고서다. 저자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거대한 폭력, ‘아내 폭력’이라 불리는 아주 친밀하고도 낯선 폭력의 실상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우리 사회의 성 차별적 인식을 낱낱이 드러낸다. 이 책은 ‘아내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계급 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권력의 문제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아주 친밀한 폭력’을 통해 여성주의의 눈으로 한국 사회와 자신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1만4000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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