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의 날이 밝았다. 과연 9일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표가 가결선인 200표 이상 나올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야 3당은 8일부터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해 국회에서 밤샘 농성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 부결 시 국회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총사퇴한다는 ‘배수진’까지 쳤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탄핵안이 통과되면 황교안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 총 사퇴까지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탄핵안이 부결될 시, 박 대통령의 직은 유지되지만 국정 동력을 되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정국이 안개 속에 쌓여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전세계의 사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불명예 퇴진한 대통령은 15명이 넘는다. 이 중 4명의 사례를 정리했다.
◇‘거짓말쟁이’…불명예 안고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외신에서 박 대통령과 자주 비교하는 사례는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사임이다. 닉슨은 일명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2년이 넘게 검찰, 의회와 힘겨루기를 하다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그는 연임하기 위해 지난 1972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사무실이 입주한 위싱턴DC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빌딩 ‘워터게이트’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했다. 전직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장치를 설치했으나, 결국 호텔 경비원들에게 발각됐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집요하게 사건을 취재했고 결국 닉슨이 도청과 연관됐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닉슨은 “아랫사람들이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도청사건을 꾸민 담당자들 간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된 대통령 집무실 녹음장치 기록이 공개되며 거짓말이 들통났다. 1974년 7월 하원 법사위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탄핵안 상원 통과가 확실해지자 닉슨은 그해 8월 스스로 물러났다.
◇ “시중 이자율보다 낮게 돈 빌렸다” 크리스티안 불프 전 독일 대통령
기업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 물러난 대통령도 있다. 독일의 크리스티안 불프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만인 지난 2012년 2월 사퇴했다. 시작은 불프가 지난 2008년 니더작센주 주 총리 시절 주택구매를 위해 친구에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린 것이다. 불프는 은행 이자보다 1% 낮은 이자율로 50만 유로(약 6억2000만원)를 빌렸고 2년 뒤에 상환했다. ‘공직자가 시중 이자율보다 낮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은 독일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불프는 “친구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는 나라에서 대통령을 하고 싶진 않다”고 불만을 터트렸지만 이후 그가 받은 각종 특혜가 언론을 통해 추가로 드러났다. 불프의 가족은 지난 2008년 뮌헨 옥토버페스트에서 한 영화제작사로부터 호텔 및 유흥비로 720유로(약 90만원)을 받았다. 또 그의 아내는 차를 살 때 할부 이자를 1.5%에서 1.2%로 할인혜택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독일의 한 일간지는 자동차 딜러가 불프의 아들에게 선물한 5만 원짜리 장난감 차를 문제 삼기도 했다. 민심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여론조사 결과 독일 국민의 85%가 대통령 사임에 찬성했다. 결국 불프는 2012년 2월 “독일은 폭넓은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사퇴를 발표했다.
◇회계 부정으로 물러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브라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는 집권 5년만인 지난 9월 탄핵당했다. 호세프의 직접적인 탄핵 이유는 지난 2014년 연임을 앞두고 연방정부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하고 되돌려주지 않는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 같은 해 11월에는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의 정치권 로비 사건에 연루된 의혹까지 받았다. 이뿐 아니다. 브라질은 호세프가 집권하는 동안 최악의 경제난을 겪었다. 원자재가 하락하며 국가 신용등급은 투기등급까지 강등됐고 실업률은 11%까지 상승했다. 호세프는 “20여 년간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며 갖은 박해를 받은 저에게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리려 하고 있다”며 “결단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브라질 상원은 지난 8월31일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호세프는 브라질 역사상 탄핵당한 두 번째 대통령이 됐다.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
우리나라도 하야한 대통령의 선례가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 혁명이 발발,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 1960년 4월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이 하야의 길로 가게 된 이유는 그가 종신 집권을 꿈꿨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제2대 대통령을 연임하기 위해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꿨다. 또 종신 집권을 위해 3선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켰다. 쌓이고 쌓인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 건 3.15 부정선거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1960년 시행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에 자유당의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 선거를 자행했다. 선거인명부 허위기재, 투표함 바꿔치기가 서슴지 않고 자행됐다. 같은 해 4월11일에는 이 전 대통령의 퇴진운동을 하던 고 김주열씨의 시신이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집권 12년 만이었다. 그는 이후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승만은 정말 독재자였지만 국민의 하야 민심이 확인된 순간 받아들이고 깨끗이 물러났다”며 “박 대통령은 이승만보다 나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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