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궁지에 몰렸습니다.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 장관은 지난해 10월13일 열린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조 장관은 돌연 말을 바꿨습니다. 같은해 12월28일에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 그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적도, 작성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정황은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 26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퇴임하기 한 달 전쯤 A4 용지에 빼곡히 적힌 블랙리스트 명단을 직접 봤다고 전했습니다. 유 전 장관의 말에 따르면 조현재 문체부 1차관이 블랙리스트의 출처를 묻자 김소영 비서관은 “정무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신임 정무수석은 조 장관이었죠.
이뿐만 아닙니다. 조 장관이 서울 용산구 서계동 집무실에 있는 자신의 컴퓨터를 비롯해 블랙리스트 관련 작업을 했던 문체부 예술정책국 예술정책과의 컴퓨터 2대 하드디스크를 지난달 초 교체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문체부는 당시 사실무근을 주장했지만 이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원상 복구했다”고 번복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최순실을 모른다는 조 장관의 말도 믿기 어려워집니다. 조 장관은 자신이 최씨를 데리고 마사지시술소를 갔다거나, 그를 재벌가 사모님들에게 ‘여왕 모시듯’ 소개했다는 제보에 대해서도 ‘제보자의 실명을 밝히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의혹을 부인하는 조 장관의 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을 연상시킵니다.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혐의를 변명하기 바빴습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할 일 다 했다”고 말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지시 의혹에 대해선 “완전히 나를 엮었다”고 강변했죠.
조 장관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특검에 소환될 듯 보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정조사특위에 공문을 보내 조 장관을 청문회 위증 혐의로 고발 의결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수사를 통해 조 장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지시에 개입했다는 진술을 받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에 국정조사특위는 이날 조 장관을 위증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죠.
조 장관은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문체부 시무식을 열고 “우리 직원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장관으로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책임의식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정작 조 장관이 가장 큰 책임감을 느껴야할 국민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조 장관이 자신을 향한 ‘촛불민심’을 읽는다면, 이제는 국민 앞에 사실을 털어놔야 합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