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안해서합니다] 최저임금으로 차례상 차리기, 가능할까?

[아무도안해서합니다] 최저임금으로 차례상 차리기, 가능할까?

기사승인 2017-01-19 21:02:30

[쿠키뉴스=이승희, 심유철 기자]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 근로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입니다.

지난해에도 역시나 생필품 가격이 올랐습니다. 라면, 소주, 맥주 등의 가격은 5% 이상 상승했습니다. 배춧값은 최대 69.6% 올랐고요. 조류인플루엔자(AI)의 영향으로 달걀값 역시 폭등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비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미미합니다. 이번 해 최저시급은 지난해보다 440원 증가한 6470원입니다. 주 40시간 일한다면 한 달에 135만2230원을 벌 수 있죠. 사용자위원 측은 지난해 7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지난 2000년부터 최저임금은 연평균 8.6% 올랐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대비 3.3배가 상승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약 135만원이 한 달 생활비로 적절할까요? 이같은 질문에 쿠키뉴스 모 기자는 “그 돈에서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얼마나 남겠냐. 다가오는 설에 차례상도 못 차릴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정말일까요. 직접 겪어보면 알겠죠. 설을 약 일주일 앞두고, 서울에서 주 40시간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는 취업준비생 A씨의 삶을 들여다보겠습니다.

A씨는 아르바이트로 번 135만2230원을 어떻게 사용할까요? 가장 큰 부분은 월세와 식비가 차지합니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A씨의 원룸 월세는 45만원입니다. 하루에 2끼를 먹는다고 했을 때 한 끼당 6000원, 한달에 약 36만원의 식비가 듭니다. 여기에 가스요금 3만원, 전기사용료 1만5000원, 수도세 5000원 등이 추가로 나가죠.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이트 장소에 가야 하는 A씨는 교통요금도 8만원가량 필요합니다. 이밖에 통신비 8만원, 영어학원 수강료 26만원, 생필품 3만원 등이 추가로 지출된다고 가정했을 때 4만2230원이 수중에 남습니다.  

4만원으로 차례상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신입기자의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씩씩하게 사는 당찬 기자가 나섰습니다. 기자 역시 관악구에서 자취합니다. 영어학원을 빼면 지출 내역도 A씨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떡집이 보이네요.

보통 큰 떡 3개를 차례상에 올리지만,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습니다. 가격도 8000원이나 하고요. 다행히 손바닥 크기의 떡 3장이 2000원입니다. 양이 적다고 조상님이 기분 나빠하시면 어떡하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센스있게 약과도 구매했으니까요.

이번에는 전집입니다. 동태전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동그랑땡과 산적 400g을 8000원에 샀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차례상에는 동그랑땡, 산적, 동태전 등을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가짓수를 짝수로 준비하면 안 된다고 하네요.)

나물이 빠질 수는 없겠죠? 차례상에 올라가는 나물은 한 팩당 3000원입니다. 고사리, 시금치, 도라지를 모두 살 경우 9000원을 써야 하는데,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습니다. 나물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으니 지출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망원시장에서 나물 가게를 하는 장효원(53‧여)씨는 “이번 주는 그나마 나물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며 “다음 주는 설이 다가와 모든 나물 값이 10% 정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일입니다. 배는 2개에 5000원, 사과는 3개에 5000원이네요. 몇 년 전 설 준비를 하며 어머니와 장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제수용 과일은 개당 약 1만원이었습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원래 과일이 이 정도 가격인가요? 예전에는 배 1개당 8000원 정도였던 것 같아서요

과일가게 주인 김모(63)씨는 “3000원짜리 배도 비싸서 사람들이 벌벌 떤다”면서 “8000원짜리 배를 가게에 놔두면 누가 사겠냐. 장식품으로 놔둘 수 없지 않겠냐”고 답했습니다. 이어 “여기가 강남인 줄 아나. ‘8000원짜리 배’는 무슨”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손님은 과일을 만지다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1000원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찾아보려는 이유였을 테죠.

차례상에 올릴 청주와 인스턴트 쌀밥, 음식을 담을 일회용 접시까지 사고 나니 4230원이 남았습니다.

집에 도착해 구매한 물품들로 차례상을 만들었습니다. 조상님이 맛있게 드시길 바라며 쌀밥에 숟가락도 꽂았습니다. 얼추 구색은 갖춰진 것 같네요. 뿌듯합니다.

음복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죠. 많이 마셔야겠습니다. 수중에 남은 돈이 없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술이 달게 느껴집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얼마 전 해외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 친구는 얼마를 받고 일하고 있을까요? 어디든 대한민국보다 많이 받을 겁니다.

지난해 기준 호주 최저시급은 15.58달러, 우리 돈으로 약 1만8000원입니다. 호주 외에도 룩셈부르크, 프랑스 등 10여 국가의 최저임금은 1만원이 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3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가 시급 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노동자들의 바람은 단순합니다. 최저임금으로 ‘생존’이 아닌 ‘생활’을 하는 것이죠. 

음식을 먹으며 남은 돈을 계산해봤습니다.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차고 목이 멥니다. 청주라도 마셔야겠습니다.

aga4458@kukinews.com, tladbcjf@kukinews.com

이승희, 심유철 기자
aga4458@kukinews.com
이승희, 심유철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