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정진용 기자] 서울시가 ‘돈의문 박물관마을’에 세운 공사가림벽(가림벽) 벽화를 두고 여성 비하 논란이 일고 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은 시가 종로구 신문로2가 7-24번지 일원 1만 271.56㎡ 구역에 대해 추진하는 도시재정비사업이다. 시는 해당 구역이 한양도성 서쪽 성문(돈의문)안 첫 동네(새문안동네)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고 지난해 6월부터 문화시설 조성에 착수했다. 이 구역에는 1800년대 길과 토지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에 세워진 총 226m 길이의 가림벽에는 ‘1920년대 서울 거리를 거닐다’라는 주제로 삽화와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일부 그림이 여성 비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빽 하나는 들어줘야 신여성’, ‘구두 한 켤레=벼 두 섬, 용맹스러운 아가씨’라는 문구다. 여성을 본인의 능력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는 ‘된장녀’처럼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여성을 남성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존재로 묘사한 부분도 있다. 남루한 복장의 남성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성을 태운 수레를 끄는 그림이 이에 해당한다. 그림 위에는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운명….’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시절에도 인기 많았던 전문직 남성’이라는 문구와 함께 남녀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그림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벽화 그림이 불쾌하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 저런 그림이 있다는 것이 불쾌하다’ ‘벽화의 의도를 모르겠다’ ‘이 그림을 허가해준 서울시가 문제다’ ‘여성 혐오 요소가 가득한데 풍자와 유머가 있는 척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돈의문 박물관마을’ 가림벽 벽화에 여성 혐오 문제가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도 여성을 가리키며 ‘저 꽃 좀 봐’라고 쓰인 문구를 두고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는 항의 민원이 접수됐다. 시 측은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시 도시건축센터 담당자는 삽화의 의도는 오히려 남성들의 가부장적 시각을 풍자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1920년대 신문 삽화를 원본 그대로 넣은 것이다. 근대 시대에 들어서서도 남성의 시각이 여전히 조선 시대에 멈춰있다는 것을 비판하려 했다”면서 “그림의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가림벽의 디자인을 담당한 시 시민소통기획관 관계자는 “1920년대 당시엔 남성들만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생활상을 그대로 그려 넣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풍자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벽화를 보는 사람에게 풍자가 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라며 “시는 단순히 당시 그려진 삽화를 그대로 갖다놓았다는 입장이지만 이것 역시 근대 사회에서 신여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여과 없이 ‘편집’했다는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혀 맥락 없는 그림을 나열해 여성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면서 “시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인 여성 혐오에 대한 고려 없이 섬세하지 못한 행정 처리를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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