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정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결국 구속수사를 받게 됐다. 1938년 삼성상회로 출범한 이래 첫 삼성 총수 구속이다.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은 충격에 빠졌고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 첫 총수 구속에 삼성 ‘망연자실’…“재판에 최선”
지난달 19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된 이후 보강 수사를 진행해온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14일 뇌물공여, 횡령·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위증 등의 5가지 혐의를 적용 영장을 재청구했고 17일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부회장과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애초에 총 430억여원을 뇌물공여‧횡령액으로 규정했던 특검은 2차 구속영장에 횡령액을 늘리고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을 추가했다. 지난달 수사 진행, 소명 미비 등을 이유로 영장이 기각됐던 것을 보강해 이 부회장 구속수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로써 삼성은 총수 3대째에 처음으로 구속기소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은 1966년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 당시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과 경영 은퇴 선언으로 위기를 면했다.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도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관련 수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사면됐고 2005년 정치권에 대한 로비 의혹에도 서면조사만 받았다.
총수 구속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와 최순실 측에 대한 뇌물공여 의혹을 적극 부인‧해명해온 삼성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이날 오전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입장을 밝혔을 뿐 구체적인 계획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앞서 최순실 일가 추가지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특혜 등이 없었다며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던 삼성은 이 부회장 구속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 외에 대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에 따라 삼성은 향후 재판에서 혐의를 벗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영장 발부는 유죄 인정이 아닌 혐의의 일부 개연성 소명이 이뤄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증거조사, 증인·피고인 신문 등 일련의 절차를 거쳐 범죄사실을 규명하게 된다. 삼성은 구속 적부심사 청구, 기소 후 보석 청구 등으로 공방을 이어갈 수 있다.
◇ 안팎으로 총체적 난국…의사결정 구조 전환 필요
이 부회장 구속에 따라 삼성은 경영 현안 처리부터 글로벌 위기 대응을 위한 비상체제 가동이 불가피해 졌다. 특검 수사로 지체되던 인사와 조직개편 등 내부 쇄신과 인수합병(M&A), 시설투자 등 중장기 경영 전략 등이 난제다. 이 부회장의 최종 결제가 필요하거나 이의 연속선상에 있는 모든 의사결정이 이에 해당한다.
이미 삼성은 매년 연말 단행하는 임원 인사 등을 무기한 미뤄왔다. 최근 간부급 인사와 직급체계 개편 등에 속도를 내기 시작해 다음달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사장단 인사와 그룹 차원의 채용 등 굵직한 부분은 불확실성에 빠졌다.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의 일환으로 80억달러(약 9조6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미국 자동차 전장 기업 하만 인수에도 차질이 예상되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기조에 대응한 해외 투자도 결정이 어렵게 됐다. 특히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투자와 위기 대처는 장기적 안목에 따른 과감한 의사결정이 요구돼 전문경영인이 일임하기는 어려운 사항이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 단종 결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 도덕성 문제로 해외에서 사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지속 언급된다. 미국과 유럽연합 EU 등이 제3국에서 뇌물을 제공하거나 하면 사업 제한 조치를 가하거나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부패방지법에 따른 불이익 등이 대표적이다. 이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등이 사법 결정을 근거로 당시 피해를 입었다며 수천억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올해 지주사 전환 등의 굵직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 등을 포함한 기업구조 개선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중 대략적인 방향이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이에 관한 절차도 모두 마비된 상황이다. 장기적인 조직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룹의 콘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 해체 시나리오는 반 강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경유착의 창구를 없앤다는 취지였지만 이 부회장의 자발적 쇄신이 아닌 구속에 따른 대책으로 진행될 수 있다.
애초에 거론되던 유력한 미래전략실 해체 시나리오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업 중심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사업 중심의 의사결정 체제 확립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됐지만 이 부회장 구속이 결정된 이상 각 계열사 사장들의 집단협의체가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공백을 메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2008년에도 특검 수사에 따라 이건희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미래전략실의 전신인 전략기획실을 해체한 바 있다. 이후 2010년 이 회장 복귀까지 전문경영인 집단협의체로 운영됐으나 장기적 투자 결정이 원활하지 못해 태양광, LED 등 일부 사업에서 경쟁 우위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