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정우 기자] 삼성이 그룹의 중심에 있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재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번 결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강한 의지에 따라 내려진 것으로 평가된다.
◇미전실 해체… ‘이재용 시대’ 도래
28일 삼성은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실장인 최지성 부회장과 차장인 장충기 사장을 비롯한 팀장급 구성원들의 사임 계획을 담아 ‘삼성 쇄신 계획’을 밝혔다. 전신인 전략기획실이 2010년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 7년 만의 그룹 ‘콘트롤타워’ 전격 해체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 결정에 대해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향후 삼성에 불어 닥칠 변화의 바람에 주목하고 있다. 오너인 이 부회장이 특검 수사로 구속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박근혜 정부와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일가와의 접점으로 지적된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했다.
삼성이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강한 그룹 차원의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의 결정은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동시에 이 부회장이 중앙집권형 조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순실 게이트’ 특검 수사를 기점으로 본래 계획이었던 미래전략실 해체를 가시화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청문회에서 선대 회장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 부회장 자신이 추구하는 조직과는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든 이후 경영 전반에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이뤄왔다.
이 회장이 쓰러진 2014년 11월 삼성은 방산·화학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마무리 지었으며 삼성정밀화학과 삼성SDI 케미칼사업은 롯데그룹에 넘겼다. 또한 삼성SDS와 제일모직을 상장한 데 이어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 건설·리조트·패션·상사 사업을 한 데 모았다. 지난해에는 사업 규모가 커진 삼성SDS는 물류 부문을 독립시킬 계획도 세웠다. 장기적으로는 삼성바이오에피스·바이오로직스를 앞세워 바이오 사업을 새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일련의 개편은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받았지만, 비(非)주력 사업은 정리됐으며 성장세에 있는 부문과 상대적으로 정체된 부문을 구분, 장기적 성장 포트폴리오 구성에 들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부에서는 미국 해외 판매법인을 통합하고 일부 독립 조직을 기능별로 나눠 사업부서로 편입시키는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지난해에는 서초 사옥에 모여 있던 삼성전자 사업 부서를 수원 사업장으로 옮기는 등 업무 효율성 중심의 변화가 시작됐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의 사장 승진 등 전문성과 성과를 인정받은 인재에 대한 적극 기용도 이뤄졌다.
동시에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전용기 매각, 대규모 스포츠 마케팅 종료 등 ‘불필요한’ 부분을 철저히 배제하며 ‘실용주의’ 노선을 취해왔다. 이에 따라 별도의 법인도 없고 사업 조직이 아닌 미래전략실의 축소 또는 해체 가능성은 지난 2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특검 기소 상황도 작용
이번 결정은 특검의 기소 상황에서 쇄신을 미룰 수 없었던 이유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 해체와 함께 약속했던 전경련 활동 중단도 실행에 옮겼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은 지난 6일부터 전경련 탈퇴를 공식화 했다. 전경련은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정부와 거래를 주고받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정부와의 대외 접점 배제에 나선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아 대내 접점인 미래전략실까지 해체를 실행한 것이다.
또 삼성은 이날 쇄신 계획에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논란에 휘말렸던 박상진 승마협회장의 사임을 밝히고 협회 파견 임직원도 원 소속사로 복귀시켰다고 밝혔다. 앞서 최근에는 일정 금액 이상의 외부 출연 또는 기부는 반드시 이사회 산하 위원회 승인을 거쳐야 하도록 결정하기도 했다.
일련의 쇄신 방안이 최순실 게이트와 연관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은 미래전략실 전격 해체와 함께 ‘의혹을 싹’을 신속하게 정리하는 과정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동시에 기존의 사업 중심 조직 재편 계획에도 가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과 같이 본래 사업 중심 조직을 추구해온 이 부회장의 의지가 최근 사태에 탄력을 받은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삼성은 오너와 경영자의 역할이 한층 분명한 기업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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