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으로] 장애를 딛고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강동훈 씨

[일상의 삶으로] 장애를 딛고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강동훈 씨

기사승인 2017-04-20 09:15:05

[쿠키뉴스=이영수 기자]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가 손상된, 그래서 휠체어를 타게 된 사람입니다. 어려운 수술과 힘겨운 재활, 그리고 긴 터널 같던 실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직업과 일상 그리고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뒤돌아보니 아직 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네요.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당신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척수장애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발견한 희망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마다 바쁘게 살아가다 교통사고, 낙상, 의료사고, 질병 등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이들에게 가족, 친구,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장애를 딛고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 12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주 불의의 사고로 기관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굳은 재활 의지로 안양역 철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계신 정규명 씨의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공무원 그만두고 만화가로 전업한 강동훈 씨를 소개합니다.

장애인으로 새롭게 살아간다는 건

“병원에 있든 나와서든 중간에 사고 난 사람은 조금 쉬어가는 기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멀쩡하게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3개월 만에 장애인으로 새롭게 잘 살아간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오히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자기 성찰의 과정이랄까, 자기 삶을 좀 뒤돌아보고, 장애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강동훈 씨가 흉수를 다쳐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것은 90년 대. 운동 중 낙상해 부산 백병원에 들어갔더니 석 달 만에 나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장애인 정보가 전무하던 시절이었죠. ‘언젠가 낫겠지’하는 생각으로 3년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자 희망은 사라져 버렸고 울산대 복학도 미련 없이 접게 되었던 것이죠.

“어차피 기계공학 쪽 일은 못할 것 같았어요. 전산공부를 하던 선배가 ‘컴퓨터 공부를 해봐라’하기에 386컴퓨터를 장만했는데 주구장창 게임만 하게 됐죠. 휠체어를 타도 두 손은 쓸 수 있으니까 컴퓨터 프로그램을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덕산직업훈련학교 정보처리학과에 들어갔어요. 2년 공부하고 컴퓨터 자격증을 딴 다음에 3~4년 직장에 들어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하게 되었죠.”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아서

동훈 씨는 컴퓨터 게이머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집안의 부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당시 나라 경제가 어렵던 IMF 시절, 친구 따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2년 만에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자리인 전산직 공무원으로 동훈 씨는 2년 반을 일을 했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에게 맞는 직업이 있는 것 같아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창의적인 일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거고. 아마 나이 들어 공무원 하라면 하던 거 다 때려치우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이십 대였고 하고 싶은 게 많은, 꿈 많은 시절이라 평생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요.”

장애의 불편함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려웠다

동훈 씨는 공무원 그만두고 바로 일반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당시 컴퓨터 분야는 취업이 가능한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취직하는 일보다 어려운 건 따로 있었다고 하는데요.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다 성격상 직장생활에서 겪는 인간관계가 더 어려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고.

“80년대는 만화 그리면 아버지께 혼나고 남자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가라니까 기계공학과에 갔지만 원래는 졸업만 하면 현대자동차 다니면서 취미로 만화를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나서 컴퓨터 직장을 다니면서 만화는 취미로 하는 걸로 바꾸게 됐죠. 제가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참 좋아했거든요.”

직업을 갖는 게 중요해 택한 일이지만 20대가 지나니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을 계속하는 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례로 새벽까지 야근을 하며 7잔씩 커피를 마시니 머리가 띵하고 속이 쓰리기도 일쑤였다고. 그는 나이 서른에 미뤄두었던 꿈을 찾아 한국재활복지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만화 창작자의 길을 가다

“만화 애니메이션과에 들어갔어요. 졸업하고 만화기획사, 아는 작가의 어시스트로 들어가 4~5년 정도 일하면서 실력을 키워 나갔죠. 일이란 게 남의 일만 하다 보면 지루해지더라고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아동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간간히 하다가 이제 됐다 싶어졌을 때 35~36살쯤에 창작을 시작했어요. 지금 10년이 되었네요.”

만화 창작자의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남의 일 받아 할 때보다 수입은 더 적었죠. 써내려간 만화 기획서가 100개가 넘을 정도라고. 이래서야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그런데 2009년 만화공모전에 당선되면서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서 창작 지원금을 따내 단행본 만화책도 낼 수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이 월급 딱딱 나오고 편하긴 하지만 만화 창작을 하는 재미에 비할 순 없어요.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을 때 거기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하거든요. 큰돈이 됐든, 작은 돈이 됐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약발이 한 6개월 정도는 가더라고요. 마감날짜가 원고를 만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원고 마감일이 주는 스트레스가 창작자에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서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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