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관객의 선택은 냉정했습니다. 세 편의 한국영화 ‘박열’, ‘리얼’, ‘옥자’가 개봉 첫 주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감독 교체, 불법 유출 등 다양한 논란에 휩싸였던 ‘리얼’은 3위에 머무는 데 그쳤고, 상대적으로 논란 없이 조용히 개봉한 ‘박열’은 1위에 오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옥자’는 4위에 머물렀지만 소규모로 개봉한 걸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성적입니다.
‘리얼’은 결국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리얼’은 개봉 당일인 28일 하루 동안 14만6947명을 모았습니다. 개봉 전부터 각종 논란에 시달렸고 시사회 직후 기자, 평론가들의 악평이 쏟아졌기 때문에 박스오피스 2위도 기분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영화인지 직접 보고싶어 하는 관객의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의외의 흥행을 기록할지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들게 했죠.
하지만 거품은 금방 꺼졌습니다. 개봉 후 5일 동안 ‘리얼’을 본 누적관객수는 37만3673명에 그쳤습니다. 개봉 당일 반짝한 이후 하루 관객 10만명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리얼’은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30일 영화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아야 했고, 상영 스크린수도 970개에서 679개로 크게 축소됐습니다. 화려하고 시끄러웠던 출발에 비해 결과는 초라했습니다.
별다른 논란 없이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 건 ‘박열’이었습니다. ‘박열’은 개봉 첫 날부터 20만1974명의 관객을 불러 모아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고 현재까지 정상을 지키며 순항했습니다. 순제작비 26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가 115억원의 ‘리얼’, 600억원의 ‘옥자’를 꺾는 쾌거를 이뤄낸 것입니다. 전작 ‘동주’에 이어 또 한 번 일제감정기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준익 감독에 대한 관객들의 믿음이 흥행으로 이어졌다는 평가입니다.
‘옥자’의 성적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옥자’는 2일까지 누적관객수 11만6641명에 그치며 박스오피스 4위에 머물렀습니다. ‘리얼’의 개봉 첫 날 관객수보다 적은 숫자죠.
하지만 ‘옥자’가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3사를 제외한 전국 111개 상영관에서 개봉된 것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현재 가장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박열’의 하루 상영회수가 4000~6000회인 데 비해 옥자의 상영 횟수는 하루 300~400회에 불과합니다. 무려 10~20배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죠.
‘옥자’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좌석점유율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일 ‘옥자’는 좌석점유율 56.1%를 기록하며 상영 때마다 절반 이상의 관객을 확보했습니다. 극장 입장에서도 30.5%의 ‘박열’, 14.6%의 ‘리얼’보다 더 효율적인 장사를 한 것이죠. ‘겨우 11만에 그쳤다’는 평가 대신 ‘벌써 11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색깔을 가진 세 편의 한국 영화가 맞붙는 건 드문 일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영화를 소비하는 이유와 방식이 다양해지는 건 관객들에게도, 영화계에도 좋은 일이겠죠. 그럼에도 관객들이 시끄러운 마케팅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게 영화를 골랐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오는 5일 마블의 블록버스터 영화 ‘스파이더맨:홈커밍’이 개봉합니다. 그 이후에도 살아남는 건 어떤 영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