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tvN ‘써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12회 동안 1~2%(닐슨코리아 기준)의 시청률을 오간 것을 보면 실패작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고정 시청자층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근 서울 성암로 한 카페에서 만난 민진기 PD는 ‘써클’의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에 의미를 뒀다.
Q. 외계인과 더블 트랙, 12부작 등 ‘써클’은 다양한 시도를 한 드라마예요.
“그것이 케이블 채널 드라마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가 그랬듯이 케이블 채널 드라마는 좋은 기획과 좋은 캐릭터를 구축해서 끊임없이 시즌제로 재생산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야 방송사 입장에서도 이해타산이 맞을 수 있죠. 시청자 입장에서 드라마가 생소하고 어렵다고 느껴도 다음 시즌에서 해소될 수 있고, 배우들은 안정적으로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죠. 그래서 전 시즌제가 정말 좋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12부작까지 제작하는 것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시즌제 드라마는 12부가 적당하거든요. 종영되고 없어지는 드라마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Q. 처음에는 외계인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억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전개된 이유가 있나요.
“전반부에서는 외계인에 대한 내용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어요. 드라마 전반적에 걸쳐서 외계인 외에도 기억 차단, 안전 케어 등 시청자들이 생소하게 느낄 요소들이 많았어요. 초반에 '써클'의 그런 차별성이 갖춘 상태에서 기억 이야기를 꺼내야 우리 색깔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 2회에서 외계인 캐릭터를 보여준 다음 기억 이야기를 서서히 보여줬죠. 출발은 외계인으로 했지만 단순한 외계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외계인 이야기만 보고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초반부를 더 매끄럽게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좋아했을 수 있겠다 싶은 아쉬움이 남아요.”
Q. 연출자 입장에서 드라마의 디테일 면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요.
“개인적으로 미술 쪽이 아쉬웠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초반에 미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차별성을 못 준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시청자들의 몰입을 해치지 않았나 싶어요. 또 타이틀 장면에서 여진구가 태우는 종이는 무슨 의미냐는 댓글을 보고 연출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한 컷이라도 허투루 만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태프들도 드라마를 많이 했던 분들인데 미술, 소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듣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놀라셨을 거예요. 서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Q. 스토리 면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드라마 초반에 김민지라는 인물이 나와요. 김준혁(김강우) 형사가 스마트 지구에서 살인을 저지른 김민지를 찾아다니죠. 원래 김민지 사건은 기억차단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려고 넣은 거예요. 그런데 사건이 너무 커져서 김준혁이 김우진(여진구)을 찾는 이야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죠. 김준혁이 스마트 지구에 들어가려고 했던 게 김우진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시청자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미국 드라마를 의식한 느낌도 많이 들었어요.
"처음 기획 의도에 시리즈로 발전 가능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러려면 미국 드라마처럼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나아가는 느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미국 드라마에서 소재를 많이 차용해서 썼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들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아무리 미국 드라마 느낌을 내려고 해도 제작 규모나 소재의 제한 때문에 구현하기 힘든 점이 많아요.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인간의 감정이나 형제 이야기로 스토리를 끌고 갔어요."
Q. 연출자로서 작가들에게 특별히 요청한 점은 없었나요.
"미래 세계의 기술적인 설정이 스토리를 과하게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또 스토리 전반에 걸쳐 힘 있는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고요. 후반부에서 이야기가 처지거나 용두사미가 되면 안 되니까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했으면 싶었어요."
Q. 드라마 현장은 '써클'이 처음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예능과 달라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완전히 처음은 아니었어요. tvN '롤러코스터', '푸른 거탑'. 'SNL 코리아'처럼 대본이 있는 드라마 형식의 프로그램을 연출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드라마가 두렵거나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예능과 달리 배우들의 신뢰감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현장에서 서로의 내공이 부딪혔을 때 제가 밀리면 제어가 안될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썼죠. 배우들이 불안할까봐 더 간결하고 빠른 속도로 연출하려고 했어요."
Q. '써클' 시즌2에 대한 생각도 하고 계신 건가요.
"시즌2를 제 결정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회사 상황과 시청자들의 반응이 중요하죠. 만약 시즌2를 만들게 되면 사전 제작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은 들어요. 전체 분량의 절반을 미리 제작하고, 나머지 반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또 CG 문제도 있어요. '써클'은 CG가 12회에 전부 들어가거든요. 외계인부터 기억차단, 안전케어 칩, 블루버드의 해킹 장면까지 거의 매회 200컷 이상의 CG가 들어갔죠. 시간이 촉박해서 힘들었던 만큼 시즌2를 한다면 사전제작이 꼭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Q. '써클'은 시청자들과 제작진이 게임하듯 진행되는 드라마였어요. 제작진과 시청자 간에 대결 구도가 될 수도 있었는데 '써클'은 양쪽 모두 같은 편이 됐던 것 같아요.
"작가님들과 저, 그리고 배우들 모두 시청자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작가도 신인이고 저도 드라마는 첫 연출이에요. 배우들도 SF 장르는 처음이었고요. 그래서 모두가 조심스럽게 낮은 자세로 만들었어요. 시청자들이 '써클'을 어설프고 아쉬운 면도 있지만, 신선하고 귀여운 드라마로 봐주신 것 같아요. 이런 드라마가 잘 돼야 또 만들어질 수 있고, 그래야 한국 드라마가 발전할 수 있다는 대의명분에 공감해주신 것 같기도 해요. 좋은 마음으로 드라마를 아껴주신 덕분에 마지막까지 잘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민진기 PD님에게 '써클'은 어떤 의미의 드라마인가요.
"tvN이 11년 동안 성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를 겁내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써클'이 실패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다음에 또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겼으니까요. 새로운 장르를 보여준 것이 후배 PD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써클'이 더 많은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토대가 된 것 같아서 뜻깊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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