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군함도' 이정현 "말년, 허구 속에서나마 카타르시스 주는 존재"

[쿠키인터뷰] '군함도' 이정현 "말년, 허구 속에서나마 카타르시스 주는 존재"

기사승인 2017-07-31 17:12:14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가 벌써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3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그러나 소재가 소재니만큼 아무래도 출연진이나 제작진들도 마냥 기뻐하기는 어렵다. “관심이 많은 만큼 고맙지만, 그만큼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오해 살까봐 조심하려고 해요.”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정현의 말이다. 막상 영화 촬영할 때는 자신들끼리 즐겁게 의기투합해 찍었지만, 뚜껑이 열렸으니 관객들에게 판단을 맡기겠다는 마음도 있다.

이정현은 ‘군함도’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말년 역을 맡았다. 말년은 중국에 끌려갔다가 다시 군함도로 끌려온 피해자다. 자신이 당할 일을 미리 알고 있는 만큼 소녀들과 강제로 유곽에 격리당할 때도 분노하기보다는 체념한다. 그러나 까마득하게 어린 소희(김수안)가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데에는 분노하고, 어린 소녀들의 정신적 지주나마 되어주는 존재다. ‘군함도’ 속 대부분의 인물이 완전한 허구의 존재지만 말년만큼은 롤 모델을 가지고 만들어낸,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인물이다.

“‘군함도’라는 장소에서 있었던 사실을 알리겠다는 류승완 감독님의 용기가 좋아서 작품을 선택했어요. 어떤 분들은 제게 연기변신을 꾀한 것 아니냐고 물으시는데, 그런 것을 생각할 만큼 출연 결정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끌렸고, 결정했죠.”

말년의 캐릭터는 후반부로 갈수록 강해진다. 말년이 영화 초에 가지고 있는 감정은 체념이 주류인데다가 '같은 조선인들도 일본 사람들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대사로 관객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이정현은 “말년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캐릭터여서 좋았다”고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의 아픔을 모르지 않아요. 국내에 나온 모든 다큐를 섭렵했고, 관련 영화들도 샅샅이 훑었죠. 저는 말년이 아무것도 모르고 강제로 끌려가서 무참한 짓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과 슬픔을 허구로나마 위로해줄 수 있는 강한 캐릭터여서 끌렸어요.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일본인들에게 결국은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소녀잖아요. 그 당시의 말년 같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조선 소녀들도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비록 허구적 이야기 속일 뿐이지만 일본인들에게 대신 총구를 겨눠줄 수 있는 말년이 이정현에게는 소중히 다가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혹평이 속상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정현은 “좋은 말은 오히려 듣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좋거나 좋지 않거나 상관없이 좋은 말만 가려서 들으려면 그럴 수는 있죠. 그렇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30대에 접어들며 배운 것 중 가장 크게 여기는 것은 욕심을 버리는 법이에요. 남들 보기에 예쁘고 좋은 것만 하려면 진작 그랬겠죠. 저는 오히려 마음이 너무 편해요. 다만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군함도’는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군함도라는 섬을 기억하되 영화에서는 영화적 재미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일본 정부도 빨리 사죄했으면 좋겠습니다.”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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