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었던 광주의 상황을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과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히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시선으로 다뤘죠.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조심스럽게 다뤄졌고, 개봉 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할 만큼 호평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5·18이라는 사태를 빚어낸 주 원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는 관점을 취하고 있어 아쉬움을 자아냈죠.
그런데 막상 영화에 언급되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법적 대응을 시사해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지난 7일 “영화 ‘택시운전사’에 악의적인 왜곡과 날조가 있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날 민 전 비서관은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 미리 서둘러서 법적 대응 이런 얘기를 언급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영화 속 내용에 대해 완전히 날조된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영화에서 계엄군이 광주 시민을 겨냥해 사격하는 장면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또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도 집단 발포나 발포 명령이라는 것은 없었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며 “당시 계엄군들이 공격을 받고 몇 명이 희생되자 자위권 차원에서 사격한 것“이라고 말했죠. 이는 지난 4월 발간된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 중 ‘혼돈의 시대’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해당 회고록이 역사 왜곡 등의 문제로 출판·배포가 금지됐다는 것입니다. 지난 4일 광주지법 민사21부(재판장 박길성)는 4일 5·18단체 등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회고록의 내용 중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33가지 대목이 모두 허위라는 것이죠. 국방부가 2013년 5월 국회에 제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음’이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와 2016년 6월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스스로 했던 발언 등을 근거로 한 판결입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5·18 당시 보안사령관으로서 북한군 침투와 관련된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혀(없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또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 현장에 존재했다’는 지만원씨의 주장에 대해 “어디로 왔는데?”라고 반문하면서, “난 오늘 처음 듣는다”라는 발언을 했죠. 그러나 인터뷰 시점으로부터 채 1년이 경과되기도 전에 지씨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인용,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해 재편집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고 영화 시작 전에 관객에게 미리 고지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어떨까요. 픽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기 이전에, 회고록에서 스스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재판부의 지적부터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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