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없다

[쿡리뷰]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는 없다

기사승인 2017-08-16 17:55:12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브이아이피’(VIP·감독 박훈정)에서 ‘신세계’를 엿보고 싶은 관객은 그 기대를 접어야 할 것이다. 영화는 그간 한국 영화계에서 다양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졌던 일명 ‘남자 영화’들의 안 좋은 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요원인 재혁(장동건)은 북한 고위급 관료의 아들 김광일(이종석)을 기획 귀순시키고 해외를 요원 신분으로 떠돌던 시절에 안녕을 고한다. 김광일의 귀순 덕분에 서울 국정원에 자리를 만들었으나, 그 김광일이 문제를 일으킨다. 김광일이 성폭행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그런 김광일을 뒤쫓는 것은 폭력 사건을 일으켜 직위해제됐던 경감 채이도(김명민)다. 채이도는 시종일관 입가에 비웃음을 띠고 자신들을 아래로 보는 김광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국정원과 경찰이 김광일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북에서 내려온 리대범(박희순)이 등장한다. 리대범은 김광일이 북한에서도 12건의 연쇄살인 용의자임을 채이도에게 알리며 김광일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한다. 김광일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은 안전하다고 믿으며 그 모두를 비웃는다.

명품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박훈정 감독이지만 ‘브이아이피’는 그런 별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들의 연속이며, 인물들은 계속해서 일관된 태도만 유지한다. 장동건은 표정이 없고, 김명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를 낸다. 이종석의 행동 동기는 얄팍하고 박휘순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성 도착적인 연쇄살인사건들은 굳이 박훈정 감독이 아니어도 유구히 다뤄진 아이템이다. 사건들은 타당한 이유 없이 128분 내내 적나라하고 끔찍하게 전시된다.

‘신세계’를 아는 관객들은 박훈정 감독의 이번 선택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훈정 감독은 폭력과 유혈, 불법과 합법 사이의 간극을 표현할 때 훨씬 세련된 방법이 무엇인지 이미 보여준 감독이기 때문이다. ‘브이아이피’에는 ‘신세계’의 세련미도, ‘부당거래’의 통렬한 찝찝함도 없다. 박훈정 감독은 “기존 범죄영화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복합적 구도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이아이피’에 남은 것은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복잡한 관계 속에 그나마 가진 매력마저 수장시키는 그림이다. 오는 24일 개봉.

onbge@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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