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없는 것만 같던 무명의 연극 배우 송준(남연우)은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성소수자 연극 ‘다크 라이프’에 주연으로 발탁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이기에 고정 팬도 많은 연극 ‘다크 라이프’로 송준은 자신이 한걸음 더 발돋움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다. 크로스드레서, 혹은 트랜스젠더인 주인공 주디를 연기하기 위해 송준은 트랜스젠더 이나(홍정호)를 만나고, 이나와 함께 만난 성 소수자들을 이해하려 한다.
송준은 이나를 만나며 이성애자와 다른 성적 지향자들을 어렴풋이 이해해간다. “자신은 도저히 동성애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친구와 술을 먹고 싸우다가, 가장 친한 친구 우재(한명수)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을 겪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나를 봤기 때문에 송준은 제법 의젓하게 우재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다. ‘다크 라이프’의 첫 공연도 성공적으로 해낸다. 노란 여자 가발과 진한 화장에 제법 익숙해졌을 무렵, 송준은 자신이 사실은 그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속마음을 직시하게 된다.
세계 각국에서 매년 펼쳐지는 게이 프라이드(Gay Pride)에서 가장 흔하게 내걸리는 문구는 ‘우리는 당신의 아들이나 딸, 주변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시대가 변했기에 동성애, 트랜스섹슈얼 등의 성적 지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의 삶과는 유리(遊離)하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영화 ‘분장’(감독 남연우)은 그런 현실을 지적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영화다.
두꺼운 분장을 하고 주디가 되어 “나는 당신들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송준은 기실 자신의 삶과 다른 성적 지향자들의 삶을 분리해 생각하고 있다. 주디의 분장을 클렌징 티슈로 지워내는 송준의 손길 끝에는 자신이 사실은 이성애자이며, 주디는 자신의 연기일 뿐이라는 일종의 안도감이 묻어 있다. 다양한 성적 지향자들이 모인 성 소수자 모임에서 “나도 당신들을 위해 ‘다크 라이프’에서 연기하고 있다”고 나서 말하는 송준은 위선자라기보다는 시혜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영화 내내 송준은 화면의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송준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 소수자들은 화면의 왼쪽에 위치해 송준에게, 관객에게 관찰당한다. 전통적으로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오른쪽 화면에 위치해있기 마련이다. ‘분장’속 송준이 화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아가 ‘일반’이라고 생각되는 이성애자들의 위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내내 영화 속에서 오른쪽에 머무르던 송준이 영화 말미, 왼쪽에서 관객을 내려다볼 때 비로소 가짜는 진심이 된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에 공식 초청됐다. 제 42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 선택상, 제 6회 서울프라이드영화제 코리아 프라이드 섹션 핑크머니상을 수상한 '분장'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