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 6개 단체가 혼란스럽다. 한의사와 의사, 약사를 대표하는 단체들은 회장의 무능과 윤리문제가 불거지며 탄핵바람이 불거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직무영역을 두고 해묵은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병원들의 단체인 대한병원협회는 실ㆍ국장급 실무자들의 자리를 일괄적으로 바꿨다.
문재인 케어의 초석을 다져야할 시점에서 논의의 한 축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불협화음과 업무공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책협의나 집중이 이뤄지기는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약단체의 내홍이 불러올 사태에 귀추가 주목된다.
◇ 탄핵 폭풍 몰아친 한의협ㆍ의협ㆍ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김필건 회장의 해임투표를 시작했다. 5984명의 한의사들이 서명하고 일반 한의사 회원들로 구성된 김필건 회장 해임위원회가 제출한 탄핵소추안이 한의협 대의원회에서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의협 대의원회는 9일 김 회장이 오는 12월 11일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자진사퇴 예고서를 제출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6월 김 회장 스스로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실천하지 않았고, 정관상 자진사퇴는 즉시 수용돼야하는 것이지 예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회장의 자진사퇴의사에 대한 진의여부를 직접 묻기 위한 의장단 회의에 김 회장이 참석하지 않았던 점과, 임명직 임원 전체가 사퇴해야하는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던 것이 대의원회의 탄핵선거 추진 결정의 단초가 됐다.
김 회장의 탄핵여부는 오는 20일 온라인과 우편 선거가 집계되는 21일 결정될 예정이다. 만약 집계결과 2만여명의 한의사 회원 중 5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할 경우 정족수가 채워지며, 투표 인원 중 3분의 2가 회장해임에 찬성할 경우 김 회장은 탄핵된다.
이와 관련 한의계 관계자는 “앞서 회장 탄핵 선거를 치룬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약사회를 보더라도 탄핵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한의사들의 뜻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떠나 한동안 시끄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의계의 탄핵사건에 앞서 회장 불신임안이 상정됐지만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결과적으로 안건이 부결된 의협과 약사회 또한 탄핵 선거 후폭풍에 휩싸여 정상적인 회무가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장 의협은 둘로 쪼개졌다. 일각에서는 추무진 의협회장의 회무 추진 동력을 상실하며 식물협회가 됐다는 평까지 나돈다.
정부의 문재인 케어 추진에 따른 적정수가 확보와 여야 국회의원이 모두 발의하며 힘을 받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사용 문제 등 의료계 주요 현안들을 집행부가 제외된 별도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전담해 정부와의 협상력을 잃어서다.
의협 관계자는 “주요 현안에 대한 협의나 투쟁에 대한 전권을 비대위가 갖고 있지만 집행부와 협회는 이를 지원하고 기타 현안들의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며 식물협회라는 평가를 부정했지만, 추무진 집행부가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약사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찬휘 약사회장에 대한 불신임과 직무정지가처분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약사회관 재건축 관련 가계약금 1억원 수수, 연수 교육비 관련 회계조작 및 2850만원의 횡령 혐의로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심지어 10일에는 2012년 약사회장에 도전할 당시 같은 약학대학 출신 서울시약사회장 후보를 선거에 나가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며 시도지부장 선거에서 후보 매수 의혹을 받고 윤리위원회에 제소됐다.
여기에 일선 약사들의 모임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는 회원 약사들을 상대로 회비납부 거부를 독려하는 운동을 펴나갈 계획이라고 밝히며 조찬휘 집행부를 압박하고 나선 상황이다.
건약 관계자는 “조 회장의 임기가 내년인 점을 고려할 때 검찰조사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집행부와 조 회장의 회무집행을 막을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라며 “직접적이고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회비납부 거부운동을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 충돌하는 간협-간무협, 내부로 곪고 있는 병협
간호계도 시끄럽긴 마찬가지다. 환자를 곁에서 돌보는 두 직역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발점은 지난달 12일 한 의료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부터다.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은 34명의 국회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개정안에 간호조무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면서도 간호조무사 단체를 권익증진과 관리를 위해 설립하는 의료인 단체로 인정하지 않는 의료법을 개정해야한다는 뜻을 담았다.
문제는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간호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질 때부터 김명연 의원의 홈페이지는 간호사와 간호대생들의 반대 글로 도배됐고, 지난 1일에는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이 성명을 발표해 규탄에 나섰다.
간호조무사는 현행법 상 의료인이 아니며 대한간호조무사협회를 의료법에 근거한 의료인 단체로 인정할 경우 간무협의 권리가 간호협회와 상당수 동일해져 간호사의 지위와 업무범위를 심각하게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을 불안하게 하는 부정적 선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간무협은 “현행법에서 간호조무사에 대한 의무규정은 간호사의 규정을 준용해 적용하면서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교육과 자격관리 등 권익증진을 위한 단체 규정은 적용하지 않는 모순된 사항을 보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처럼 시끄러운 간호계와 달리 병원들의 단체인 대한병원협회는 표면적으로는 조용하다. 탄핵에 대한 목소리나 여타 기관 혹은 세력과의 충돌도 없다. 하지만 이 같은 고요함은 대외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협회 직원들의 불만과 잡음이 내부에서 맴돌고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갑작스런 실ㆍ국장급 직원들의 일괄 업무교대로 지적된다. 한 병협 관계자는 “지난 9월 1일 실무 책임자인 실ㆍ국장이 모두 자리를 바꾸며 일선 직원들의 부담이 늘었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해당 업무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장이 자리하며 정부와의 논의과정이나 업무의 연속성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간 있었던 인사나 업무분장 등에 대한 불만이 쌓이며 협회 내부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 협의 절실한 ‘문재인 케어’, 일방적 정책수립 기회?
문제는 의약단체의 혼란이 그들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인 보장성 강화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약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보장성 강화정책의 중점 사안인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의료기관간 역할 구분과 진료체계 개편 ▶의학적 비급여에 대한 정의와 구분 ▶비급여 행위 및 치료재료에 대한 분류와 가격, 이용량 조절 ▶3대 비급여 폐지 등 보장성 강화를 위한 의료계의 양보가 필요하다.
심지어 강화된 보장성을 유지하고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발표한 ‘새로운 비급여의 발생 차단과 관리 강화’를 위해 도입해야하는 신포괄수가제와 만성질환관리제, 상대가치점수 개편 및 심사체계 개선은 의료계 협조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같은 상황에도 의약단체의 관리 및 감독권한을 갖고 있으며 정책 수립의 주체이자 의약단체의 협의 대상인 보건복지부는 “관계없다”는 반응이다. 비상대책위원회든, 실무를 모르는 실ㆍ국장이든, 내홍을 겪는 집행부든 협상 테이블에 나와 논의만 진행되면 된다는 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약단체 내부의 혼란은 계속돼왔다. 지금까지 집행부가 바뀌고 논의 주체가 변해도 협상은 이어졌다”며 “정책 논의는 계속될 것이며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수년간 보건의료정책이 수립되고 논의를 지켜봐온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복지부와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그는 “집행부의 혼란을 틈타 정책방향이 일방적으로 흐르거나 달라지는 경우가 심심찮다. 2014년 의정협의는커녕 2000년 의약분업 당시 합의된 사항도 아직 이행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며 “문재인 케어 논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걱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