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걸작이 돌아왔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감독 드니 빌뇌브)은 속편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했다. 여전히 어둡고 잔잔하다. 철학적이고 난해한 점도 그대로다.
전편인 영화 ‘블레이드 러너’(감독 리들리 스콧)는 지난 1982년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서 참패했다. 기존 SF 영화의 문법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이야기 대신,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철학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에게 재평가 받으며 걸작의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 속 독특한 세계관의 매력이 알려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특유의 음울한 세계관과 영상미는 어두운 미래를 그린 이후 SF 영화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 이후 35년 만에 제작된 후속작이다. 당시 감독을 맡은 리들리 스콧이 제작 총괄을 맡아 못 다한 이후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편이 보여준 특유의 매력을 살리는 동시에 기술의 한계로 보여주지 못한 다양한 그림을 스크린에 펼쳐낸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시대적 배경은 ‘블레이드 러너’의 2019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2049년이다. 블레이드 러너로 활동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의 리플리컨트 K(라이언 고슬링)가 주인공이다. 그는 반란군 리플리컨트 중 한 명인 사퍼 모턴을 찾아내 격투 끝에 폐기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죽기 전 남긴 “넌 기적을 본 적이 없다”는 말과 그의 집 근처에서 발견된 유골이 보관된 박스는 K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연결되며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불친절한 전개는 여전하다. 영화 속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보는 느낌이다. 또 실존 세계와 가상 세계, 원본과 복제, 그리고 이미지 등 철학적인 내용이 이중·삼중 구조로 덧씌워져 있다. 인물에 몰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 연출 덕분에 하나씩 벗겨지며 드러나는 진실에 공감하기도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영화다.
영화 속 K는 진실(Truth)을 쫓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진짜(Realness)를 쫓게 된다. 사람이 아닌 리플리컨트가 정말 의미 있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깡통 취급을 받으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던 리플리컨트 K와 혁명의 씨앗이 될 주인공으로서의 리플리컨트 K의 간극은 크다. 결국 그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을 선택한다.
주인공 K가 느끼는 감정의 낙폭만큼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도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블레이드 러너’를 기억하는 관객은 과거를 추억할 수 있고, 전편을 보지 못한 관객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어두운 SF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영화 ‘라라랜드’로 전성기를 맞고 있는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나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컨택트’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드니 빌뇌브 감독보다는 제작자로 나선 리들리 스콧의 영향력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15세 관람가. 12일 개봉.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