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칼럼] 뽑기의 문화심리학

[산업칼럼] 뽑기의 문화심리학

기사승인 2017-11-19 09:05:30


확률형아이템(이하 확률템)을 다른 말로 ‘뽑기게임’이라고도 부른다. 사실 뽑기라는 것은 동네 문방구에서부터 인생역전 로또까지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친숙한 선택방식이다. 어제 오늘일이 아닌 뽑기가 왜 최근에 이슈가 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확률템의 사회문화적인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일상문화에서 뽑기 확산이 피부로 느껴진 것은 인형 뽑기가 으뜸인 듯싶다. 필요한 기술은 크레인의 레버를 조정해 인형을 걸리게 해서 기계 밖으로 인형을 뽑아내는 매우 간단한 조작이 전부다. 그런데 보기와 다르게 난이도가 매우 높다. 뽑기 시작단계에서 거의 대부분 집게로 인형을 집어 올리는 것까지는 성공한다. 그런데 그 다음 인형을 입구로 이동시키는 순간 거의 다 떨어져버린다. ‘하! 아까비~’라는 탄식과 함께 말이다. 잘 뽑히는 뽑기방과 뽑기 기계는 금방 입소문을 탄다. 사업주의 사업성과 이용자의 만족감이 교차하는 절묘한 비율이 성패의 노하우다.

뽑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단지 뽑아낸 인형에 있지만은 않다. 뽑기 과정에서 느끼는 묘한 흥분과 스릴이라는 심리적 경험이 더 핵심이다. ‘거의 뽑을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과 함께 ‘기필코 뽑고야 말겠어’하는 오기로 지갑 속 밑천을 투입한다. 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니어미스 효과(near-miss effect)’라고 부른다. 그냥 처음부터 실패하면 일찍 포기를 하지만 목표에 거의 가까워져서 실패하면 지속적으로 시도를 하게 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현상이다. 선거에서 2등으로 낙선한 후보가 다음 선거에 또 도전하는 것이나, 아쉽게 진 게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 판 더!’를 외치는 것은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니어미스효과일 것이다. 

확률템에서도 이런 구조와 흐름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붉은템, 보라템같은 회귀템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하다가 결국 흔한 잿빛 템들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마저도 반복되다 보면 돈도 아깝고, ‘내가 이 시간에 왜 이런 것을 했을까’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현자(賢者)타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에 비례하여 스릴도 약해진다. 봉제 인형과 희귀 게임아이템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뽑기라는 메커니즘의 구조로 볼 때 확률템의 열풍은 한시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대중들이 뽑기에 매료되는 심리적 단서는 ‘프로듀스 101’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인형을 뽑는 대신 가능성 있는 ‘가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가수가 다음 단계에 올라가는 과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ARS가 되었든, 음원 구매가 되었든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 만렙을 위해 매진하는 RPG 게이머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가수가 최종 우승을 해서 신데렐라가 되는 대리만족도 잠깐일 뿐, 여전히 성공과 거리가 먼 그런 현실을 배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인기가 예전만 못한 이유다.

뽑기에 매달리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갈구하는 것일까? 싸구려 봉제인형이나 사이버 상의 보라색 아이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고 싶은 성취나 인정과 같은 심리적 욕구이리라. 배고픈 사람은 밥을 찾듯, 목마른 사람은 물을 찾는 것처럼 성취와 인정에 결핍된 환경이 빚어낸 현상인 것이다.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연애, 취업, 결혼, 내 집장만 같은 평범한 일상의 목표조차 아득한 사회적 환경들 말이다. 3포, 5포를 넘어 성취 제로(0)로 수렴해가는 N포 세대의 좌절 말이다. 이런 점에서 확률템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원흉이 아니라, 사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확률템의 문제를 일부 몰지각한 게임사와 사행심에 눈이 먼 게이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뭔가 희망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건강한 게임문화가 되었든, 희망찬 사회가 되었든 말이다.

글=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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