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라는 단어,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옷을 착용할 때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농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농담은 얼어붙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순기능을 합니다. TPO에 맞지 않는 농담은 오히려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계속된 실언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부적절한 농담으로 빈축을 샀습니다. 송 장관은 27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를 방문해 장병을 격려했습니다. 송 장관은 이날 지난 13일 귀순한 북한 병사의 이동 경로와 우리 초소 경계구역을 돌아봤습니다. 문제의 발언은 병영식당에서 나왔습니다. 송 장관이 자신을 기다리느라 좀 늦어진 장병들을 의식한 듯 "원래 식사자리에서 길게 얘기하면 재미가 없는데 식사 전 얘기와 미니스커트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하죠"라고 말한 겁니다. 이 발언은 통역을 통해 미군 병사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됐습니다.
JSA는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남북 병사들 간에 총격이 오간 곳입니다. 우리 군 대대장 등 간부 3명은 목숨을 걸고 북한 병사를 끌어냈죠. 남북 간 긴장 관계가 고조된 상황, JSA라는 장소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농담이었습니다.
이뿐만일까요. 시대착오적이고 자칫하면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질 요소도 다분했습니다. 송 장관은 즉각 국방부 보도자료를 통해 "본의와 다르게 부적절한 표현이 있었던 데 대해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송 장관의 말실수는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송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국군사이버사령부에 댓글 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석방에 대해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당 의원의 질타를 받고서야 꼬리를 내리고 정정했죠.
청와대와 엇박자를 내는 발언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송 장관은 첫 국회 업무보고 때부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배치 철회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의 발언을 해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대통령의 뜻과 반하는 탓에 여당 의원들이 수습에 나서야 했습니다. 또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말하거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이라고 비난했다가 청와대에서 '엄중 경고'를 받았습니다.
송 장관은 군을 대표하는 '얼굴'입니다. 국방부 장관이 실책을 거듭하면 군이 국민에게 믿음직한 인상을 줄 수 있을까요. 청와대와 국방부가 따로 노는듯한 모양새도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북한이 지난 9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뒤 70여일 째 잠잠하지만 조만간 또다시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군이 신뢰를 얻지 못하면 국가 안보에 좋은 영향을 끼칠 리 만무합니다. 한 번쯤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면 고의'라는 말이 있죠. 송 장관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