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의계와 의계 간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은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지와 첩약 및 한방 난임치료의 건강보험 급여 지급 여부다. 문제는 각계의 논리와 주장이 첨예한데다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3일 개최한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과 자유한국당 김명연 의원이 9월 초에 발의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의 전체회의 상정을 보류했다.
의계와 한의계,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를 시도하라는 주문이다. 다만 시간을 무한정 줄 수는 없다며 1~2개월 내 합의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법안소위에서 결단을 내리겠다는 뜻도 함께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의계와 한의계 중 어느 손을 들어줄 것인가. 혹은 이들은 생각하지 못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판단에 앞서 3가지 쟁점에 대한 각계의 주장과 논리, 판단에 도움이 될 사실들을 정리해봤다.
◇ 정치권,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한의사 쓰게 하자”
여ㆍ야 양당에서 발의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관련 법안은 크게 2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의료법 상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X-ray) 관리운용자격을 한의사에게도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명연 의원은 “한의학이 의료과학기술의 발달에 부응하고 질병진단의 정확성과 예방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한의사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인재근 의원은 “현행법령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관리운용자격을 명시하지 않은 바, 장치를 설치한 의료기관의 경우 해당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책임을 부과함으로써 안전관리에 더욱 노력해 종사자 및 환자의 불필요한 방사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질병진단을 위한 편의성과 정확성, 효과성에 방점을 찍은 반면, 인재근 의원은 관리운용자격에 한의사를 포함한 장비가 설치된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로 못 박아 안전관리와 책임을 강화하는데 뜻을 두고 있다.
여기에 두 국회의원 모두 한방 의료행위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제고하고 국민건강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한방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를 설치하고 한방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 의계, “X-선은 현대 과학의 산물, 절대불가”
이와 관련 13만 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의사협회는 즉각적인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의협은 9월 6일 김 의원의 법이 발의된 직후 “우리나라 면허체계를 부정하고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는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의원에서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전권을 부여하고 대응체계를 비대위로 단일화하는 등 통일된 의견을 강하게 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의료법 개정을 통해 한의사에게 허용하겠다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는 과학적 원리로 개발된 ‘의료기기’로, 한방원리를 근거로 한 기기들과는 다르며 의사들에게만 사용이 허가된 장비라는 점이다.
의사들은 그 근거로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한의사가 X-선이나 초음파골밀도측정기를 이용해 골밀도를 측정한 행위를 의료법 위반으로 판결한 사례를 제시하며 한의사들의 방사선발생장치 사용은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X-선의 안전관리는 현대의학에 근거한 전문가적 지식이 필요하며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위해, 검사결과에 대한 부정확한 해석으로 인한 환자안전문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효과검증의 부재로 인한 환자피해 등을 언급하며 개정안 통과 저지에 적극 나서고 있다.
◇ 한의계, “X-선, 의사들의 전유물 아냐”
한의계는 의계와의 충돌보다는 국민과 정부를 상대로 한의사의 방사선진단기기 사용의 당위성과 의료법 개정안 통과필요성을 전파하는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실제 대한한의사협회는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를 통해 한방 병의원 이용 및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인식조사를 전개하고, “국민 75.8%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찬성한다”며 국민 다수의 뜻에 부응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은 치과위생사에게도 허용한 X-선 발생장치 사용을 한의사에게도 허용하는 것일 뿐”이라며 국민적 요구와 국회의 호응이 있었던 만큼 법 개정을 포함해 다각도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한의협 관계자는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산물을 점유하려는 것에 불과하다”며 방사선 진단기기를 비롯한 의료기기는 사회와 과학의 발전에 따른 결과물로 인류가 함께 누려야할 문명의 이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골절 등 근골격계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활용일 뿐이며 관련 교육은 한의과대학에서도 배운다”면서 “한의계와 의계의 협진 혹은 전원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를 위한 정확한 진단조차 하지 못하도록 무조건 막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련의 의견대립에 정부 또한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복지부 내에서도 한의계와 의계의 주장을 두고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공통된 제도운영 방향이나 계획 수립을 어려워하는 경향도 보이는 모습이다.
심지어 지난 21일 개최된 의-한간 협진 시범사업 설명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장이 시대적 변화와 국민의 편의를 중심으로 면허의 구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에서 한 “30년 후에도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못 쓰겠냐. 어느 순간 찾아 올 것”이라는 발언도 문제가 됐다.
의계는 당장 “공무원이 면허제도를 무시하고 불법행위를 옹호하는 비상식적 발언”이라며 한의약정책과의 폐과를 언급하며 반발했고, 복지부는 “과학기술 발전 및 사회 변화 양상을 고려할 때 30년 후 먼 미래의 상황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발언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