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재임 시절 특수활동비(특활비)로 200만 달러를 미국 내 계좌로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특활비 수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29일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과 원 전 원장의 서울구치소 수용실(구치감)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원 전 원장 개인 메모와 수사 대응 자료, 연구원 회계 관련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특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온 것은 원 전 원장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재직 중이던 지난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특활비 중 일부인 국정원 해외공작금 200만 달러를 미국 스탠퍼드대 한 연구센터로 보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지난 2013년 퇴임 이후 스탠퍼드대에 객원 연구원으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자리 마련을 위해 국정원 자금을 기부하게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의 미국행은 국정원 댓글 수사로 출국 금지되며 무산됐다. 해당 자금은 그대로 스탠퍼드대에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지난 2013년 검찰 수사 당시 원 전 원장이 스탠퍼드대에 보낸 200만달러와는 별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주택을 구입하는 등 개인 용도로 85만달러를 지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는 '댓글 조작 사건'의 부담을 덜기 위해 원 전 원장을 희생양으로 넘기는 방법도 고려했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29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013년에 서천호 전 2차장 등 핵심 간부를 중심으로 작성한 문건을 검찰에 이첩했다. 이 문건에는 국정원이 '수사가 통제 불가능한 선까지 나아가 정부의 정통성이 위협받는다'면서 '원 전 원장을 희생양으로 검찰에 넘길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원 전 원장은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나 지난 8월 파기환송심 재판 끝에 징역 4년을 선고, 법정구속됐다. 아울러 한 건설사로부터 각종 공사수주 청탁 명목으로 1억5000만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았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