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일차의료가 없다?

한국에는 일차의료가 없다?

일차의료 부족한 한국, 주치의제가 대안될까?

기사승인 2017-12-08 00:30:00

#경기도 광명에 사는 A씨는 콧물이 심한 감기에 걸려 한 동안 고생했다. 동네 마트에서 만난 지인은 감기기운을 호소하는 A씨에게 친절하고 병을 잘 보는 의사가 있다며 ‘B내과’를 추천했다. 요가수업에서 자주 보는 또 다른 지인은 콧물이 심하면 무조건 이비인후과를 가야한다며 'C이비인후과‘를 소개했다. A씨의 직장 동료는 점심시간 중 회사 인근에 있는 'D가정의학과'에 들를 것을 권했다.            

“우리나라에는 1차의료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의 말이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1차의료과 1차진료를 혼동하고 있다”며 “엄밀히 보면 일차의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차의료는 의료전달체계의 첫 단계를 말한다. 환자가 아플 때 초기 진료를 담당하는 곳이자, 개개인의 건강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1차의료기관(의원급), 2차의료기관(병원급), 3차의료기관(대학병원등 상급종합병원) 순의 절차를 거치고, 질병정도에 따라 수준별 치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료전달체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환자들은 대형병원에 몰리는 반면, 1·2차 의료기관은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하고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의료계는 일차의료 강화를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울 것을 주요 당면 과제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주치의 제도’를 통해 일차의료를 강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의 동네병원은 1차  진료기관이지 1차 의료기관은 아니다. 1차의료는 환자가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되 꾸준히 찾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때는 내과, 또 다른 때는 가정의학과를 찾는 식”이라며 “즉 1차의료가 없기 때문에 1차의료의 질을 평가할 수도, 전인적인 진료를 행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이야기하는 ‘주치의 제도’는 영국 등이 채택하고 있는 유럽식 제도다, 개인이 특정 의사를 주치의로 등록하고 일정 금액을 내면 총체적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환자가 2·3차 의료기관에 바로 가지 못하고 반드시 주치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거부감도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환자 선택권을 제한한다기보다는 의사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의료운영을 위한 개혁의 첫 단추이고, 국가가 나서서 추진하고 (환자에게)홍보한다면 국내 적용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만, 이 교수가 주장하는 ‘주치의 제도’가 국내에 안착하기에는걸림돌이 적지 않다.  전문과목 위주의 의료 환경과 국민 의료인식, 지불제도의 차이 등 해결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갑자기 영국처럼 (주치의제를) 할 수는 없겠지만 만성질환부터라도 등록 관리할 수 있도록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선 만성질환부터 1차의료기관을 지정하게 하고, 지정했을 때 의사와 환자 양쪽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적정하다. 추가 비용이 들어가지만, 불필요한 진료가 줄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국장은 “한국의 1차 진료는 대부분 전문과목 위주로 돌아간다. 1차의료기관이 환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소비자가 자신이 필요한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동네의원과 병원이 경쟁하는 일이 나타난다”며 “고혈압·당뇨, 류마티스 관절염, 치매 등 만성질환은 치료하는 질환이 아니라 관리하는 질환이다. 이 역할을 1차의료가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주치의 제도가 해법은 아니라는 견해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 의료기관에 등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현재도 고혈압·당뇨 환자의 80%는 한 의료기관을 고정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에도 만성질환 관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진찰비가 너무나 싸기 때문이다. 결국 진료비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포괄적인 만성질환 관리를 하려면 10분, 15분 정도의 충분한 상담과 교육이 필요하고, 환자에게 단기 목표를 부여하고, 혈압·혈당은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의사에게 진료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또 한 환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쏟더라도 병원이 망하지 않아야 한다”며 “만성질환 관리를 잘 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은 맞지만 주치의제도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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