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볼까

[기자수첩] 돌봄 노동자는 누가 돌볼까

기사승인 2017-12-15 00:02:00

“요양보호사는 여성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남성 이용자들은 (동성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때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여성 보호사의 서비스를 이용합니다. 왜 남성 근로자가 없을까요. 이 급여를 받고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기 때문이지요.”

모 장애인 인권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얼마 전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그는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자부심이 있을 수 있겠으나, 급여도 많지 않고 발전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며 혹평했다.

순간 기자는 ‘누군가의 업(業)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닌가’하고 발끈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요양업계 관계자들, 대부분 중년 여성이었던 당사자들은 ‘맞는 말’이라며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통쾌해 하는 반응이었다.
 
이처럼 대다수 요양보호사들이 열악한 업무 환경에 내몰려있다. 지난 2013년 서울시의회가 조사한 ‘서울시 요양보호사 처우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680명 중 97.4%가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중 폭행·폭언을 당한 경우가 80%, 성희롱 경험은 30%에 달한다. 요양보호사 71.3%의 월 평균 급여는 100~140만원에 그쳤다.

다른 분야의 돌봄 노동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차장은 “보육, 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 서로 제도와 재원은 달라도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기관이 태부족하고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하단 점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들이 자부심을 갖기도 쉽지 않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서 가장 하위단계는 의식주와 같은 생리적 욕구, 그 다음 단계는 안정감과 안전의 욕구다. 낮은 급여로 생활하기 빠듯하고, 비정규직으로 직업 안정성도 충족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아실현은 사실상 요원한 일이다. 

돌봄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도 엿보인다.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에 남성 요양보호사가 (당연히) 없다’는 지점이다. 언뜻 봐도 인과관계가 어색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 풍조 때문일까.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값없이 받아온 아들, 딸로 자라서 그런 것일까.

분명 우리사회는 돌봄 노동을 오랜 기간 여성의 일로 치부, 저평가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그동안 가정이 오롯이 감내했던 보육, 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이 사회의 몫으로 옮겨가고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요양서비스의 가치는 지금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또 앞서 소개한 인권단체 관계자의 말처럼 남성 이용자들도 동성 요양보호사의 돌봄이 필요하고, 때문에 남성 요양보호사도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 이날 토론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사회복지의 국가 책임을 확대, 국가의 직접 고용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공약이다. 그러나 이날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관계자는 “공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추가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확실한 대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갈 길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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