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정려원 “30대 여배우 대표하는 책임감, 어떻게든 잘해내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정려원 “30대 여배우 대표하는 책임감, 어떻게든 잘해내고 싶었어요”

기사승인 2017-12-15 05:00:00


배우 정려원의 재발견이었다. 그녀가 주연을 맡은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입소문의 힘을 바탕으로 갈수록 상승세를 탔다. 기존 드라마 캐릭터의 전형성을 거꾸로 뒤집은 것이 핵심이었다. 정려원이 맡은 마이듬 검사는 이기적이고 출세 지향적인 동시에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캐릭터였다. 전형적인 남자 주인공과 가까운 느낌이었다. 신선한 역할을 맛깔나게 소화한 정려원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여성스러운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13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정려원과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려원은 틈만 나면 마이듬 말투를 흉내 내며 친한 친구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털어놨다. 마이듬과 비슷한 지인이 있었던 것.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디테일한 것들을 묻고, 대사를 읽어보게 시키며 정려원의 마이듬을 완성했다.

“마이듬 캐릭터가 세서 숙제가 많았어요. 처음엔 정말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마이듬과 100% 비슷한 친구가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그 친구가 하는 말들을 대사로 해봤더니 잘 붙더라고요. 극 중에서 ‘미쳤나봐’, ‘정색하지 마, 쪽팔리니까’라고 하는 대사들도 실제 그 친구가 쓰는 말투에요. 그러다가 ‘아, 이듬이는 서브 텍스트를 말로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만 하고 말로 하지 않는 걸 이듬이는 곧바로 말하는 거죠. 그걸 밉지 않게 하는 게 기술인데 작가님이 대사를 잘 써주셨어요. 덕분에 시청자들이 더 시원하고 통쾌하게 느끼셔서 이듬이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을 찍으며 유독 큰 부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드문 캐릭터인 만큼, 그녀가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에 따라 다른 30대 여배우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이렇게 그려진 적이 없었어요. 역할을 받고 정말 뿌듯한 동시에 책임감이 컸어요. 무리수를 둬서라도 잘해내고 싶었어요. 제가 제 또래 배우들을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래서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쓰는 거야’라는 말은 진짜 듣기 싫었어요.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갔고, 체력조절도 열심히 해서 안 아프려고 했어요. ‘내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현장이 편했어요. 또 30대 여배우들이 ‘나도 저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말도 듣고 싶었어요. 이런 캐릭터를 흔하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잘해내고 싶었어요.”

정려원을 힘들게 한 요소가 또 있다. 평소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해온 것과 달리 마이듬은 실제 그녀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정려원은 그런 상황을 ‘좋아하는 연기’와 ‘잘하고 싶은 연기’로 구분해서 표현했다.


“예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공감하시는 게 나랑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뀌었어요. ‘너는 이런 게 딱이야’라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면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아요. 저와 비슷한 캐릭터니까 다른 첨가물을 더하지 않아도, 제 안에 있는 게 숨 쉬듯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저와 다른 마이듬 같은 역할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예요. 빨리 마이듬처럼 되려고 하니까 원래의 저와 충돌이 일어나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거죠. 그런데 대중들은 제가 어떻게든 잘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잘한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이전까지 조용하고 눈치를 먼저 보는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눈치 보기 전에 일단 말부터 던지자는 성격이 됐다. 마이듬을 통해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릴 때 외국생활을 해서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었지만, 소심한 성격이어서 펼칠 수가 없었어요. 별명도 ‘쫄보’, ‘민달팽이’예요. 민달팽이처럼 온몸으로 느껴도 잘 안 보이고, 누가 만지면 바로 숨는 스타일이었죠. 처음에 마이듬 캐릭터를 보고 제 모습과 중화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제 안에 있던 모습이 연기를 하면서 나온 거죠. 항상 생각만 하고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하니 얼마나 속 시원해요, 앞으로도 이듬이가 제 방에 세 들어 살면서 안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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