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치유재단이 또다시 존폐 기로에 섰다. 시민단체에서는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여성가족부(여가부)는 화해치유재단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기념사업에 대한 점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위안부 합의) 타결에 따라 일본이 지급한 10억엔을 피해자 명예회복과 상처 치유에 사용할 목적으로 여가부 산하에 설립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에 따라 조성됐다. 같은날 윤효식 여가부 기획조정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로 외교부를 통해 '조용하고 신속하게 재단을 설립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재단의 설립 및 운영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그간의 의혹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여가부는 "절차상 위법사항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가부가 신청일로부터 평균 20일이 소요되는 법인설립허가를 5일 만에 처리하고 설립허가를 위해 필수적인 법인사무실 임대차 계약을 소속 직원이 대리로 체결하는 등 재단설립을 적극 지원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설립 이후에도 화해치유재단은 여가부로부터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화해치유재단은 관련 사업 수행실적이 없고 심의조차 받지 않아 원칙적으로는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여가부는 재단 인건비, 관리비 등 운영비를 지원했다.
생존한 피해자와 사망한 피해자 유족에게 일본 정부 출연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여가부는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정부 및 재단 관계자가 위안부 합의 긍정적 면을 부각하고 현금수령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발언을 확인했다. 위로금 수령을 위해 '지급신청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필 서명을 한 이는 전체 수령자 34명 중 7명에 불과했다. 일례로 A 피해자 할머니의 경우 여가부 점검반이 현금수령 동의여부를 묻자 '으' '으으' 같은 의성어만 반복했는데 이는 동의로 간주됐다.
재단 존속여부가 논란이 된 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11월 화해치유지단은 일본 정부로부터 건네받은 출연금 중 3억을 관리비 및 인건비로 쓴 사실이 드러나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지난 7월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김태현 당시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사임하기도 했다. 화해치유재단 정관에 따르면 두 달 안에 새 이사장을 임명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이사장직은 아직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정의당은 같은 날 "굴욕 합의 의혹이 모두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면서 "합의가 무효인 만큼 잘못된 합의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도 더는 존속할 명분이 없다. 정부는 재단 해산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에서도 화해치유재단을 존속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은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면합의가 드러난 만큼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여가부는 화해치유재단 해산 여부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여가부 관계자는 "(재단 해산은) 형식적으로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며 관계기관 등의 논의가 전체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단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가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재단을 해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여가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지난 7월 취임식에서 "화해치유재단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