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죽음 선택하는 10대, '좋은 선생님'은 누구일까

[기자수첩] 죽음 선택하는 10대, '좋은 선생님'은 누구일까

기사승인 2018-01-12 04:00:00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답이라고요? 좋은 선생님이 없습니다.”

매년 반 배정 시기마다 어려움을 겪는다는 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의 말이다.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의 자살을 막을 해결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는 “자살위험 학생이 올해를 무사히 넘겼다면 내년에도 또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방법이 될 순 없다”며 “학교 선생님들도 관련 교육은 안 받았다. 위기관리위원회를 만들려고 해도 학교에는 전문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자살분야에서 국민생명지키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힐 만큼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심각한 문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수년째 안고 있으며, 자살 문제에서 10대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4.9명의 청소년이 자살로 사망했다. 이 시기 전체 자살률(24.6명)보다는 낮지만, 감수성이 높고, 또래집단의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는 청소년기의 특징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자살 청소년 1명이 발생하면 같은 학급, 같은 학교 또는 같은 또래집단에 속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받는다. 친구의 자살을 접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살위험 학생이 양산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과 이웃도 포함된다. 따라서 청소년 자살 예방 노력뿐만 아니라 자살사례가 발생할 경우 남은 이들이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는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돌볼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1만 1526개교 중 상담교사나 상담사가 상주하는 학교는 평균 10곳 중 4곳(41.1%)에 불과하다. 대부분 지역교육청이나 시·도 교육청 등에 배치돼 있다가 학교에서 요청에 들어오면 파견을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학교 상담실 문턱은 높다. 필요한 때 상담을 받기도 쉽지 않거니와, 또래집단에서 ‘문제아’로 찍힐 우려 때문이다. 상담사가 상주하지 않는 경우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학교에 찾아온 낯선 선생님과 평소에는 닫혀있는 상담실에 들어가는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이는 또한 고위험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학생들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전문성과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떠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자살고위험 청소년을 학교에서 내보내면 문제가 사라질까. 이들은 고스란히 학교 밖 자살고위험 청소년이 되고, 학교 밖 청소년의 자살위험도는 학교 안 청소년보다 높다.

앞서 모 교장 선생님의 말처럼 우리 학교 현장에는 ‘좋은 선생님’이 부족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에게 ‘좋은’ 선생님은 인품이나 성정, 강습 능력이 뛰어난 분이 아니다. 예민하고 민감한 마음을 보듬어줄 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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