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을 외면한 정부의 남북 단일팀 추진에 의문이 깊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정부는 이에 즉각 화답했고 남북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등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북한에 구애를 펼쳤다.
화색이 도는 정치권과는 달리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피겨와 봅슬레이에서 단일팀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반발이 극심해졌다. 논란이 심화되자 강원도는 '최문순 도지사의 개인적인 의견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역시 뒤늦게 전면에 나서 피겨와 봅슬레이는 단일팀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화가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태강 문체부 2차관은 12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열린 2018 국가대표 훈련 개시식에서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과 공동 입장 등을 북한에 제안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 여자 아이스하키팀과 구체적인 논의없이 일방향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다.
반발이 극심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완고하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15일 열린 국회 평창 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 지원 특위에서 남북 단일팀에 대한 의견을 드러냈다. 그는 국내 선수들의 자격을 박탈해선 안 된다는 지적에 “우리 선수단 23명을 유지하고 북한 선수들을 플러스 알파로 받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면서 “아이스하키는 2분 간격으로 교체가 이뤄져 선수들이 출전을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시적으로 반발을 잠재우고자 하는 의도였겠지만 이는 오히려 악수가 돼 돌아왔다. 정치권이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만 혈안이 됐을 뿐 아이스하키 종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부족하단 지적이 잇따랐다.
규정 상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엔트리는 23명이다. 정부의 설명처럼 23명 플러스 알파로 단일팀을 구성하려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참가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특정 국가 '편의 봐주기'라 성사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도 장관의 교체 발언 역시 전술적 운용을 무시한 무지한 발언이다.
국내 선수들의 기회 박탈 이외에도 단일팀 추진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시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현장과의 소통 없이 강압적으로 단일화를 추진했다. 일생에 단 한 번 설까 말까 한 큰 무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린 선수들의 노력이 정치권의 계산 아래 단 몇 일만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 여부는 오랜 기간 화두였다. 북한의 위협이 잠재하는 한 올림픽 흥행에도 악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컸다. 평화와 화합은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 올림픽 기간만큼이라도 북한과 대립을 멈추고 손을 맞잡는다면 그것 자체로 이목을 끌 수 있다. 이를 기점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 역시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인들이 치적 쌓기로 변질돼선 곤란하다. 정부는 현장의 불편한 기색에도 유언의 압력을 넣으며 선수들을 내몰고 있다. 정부의 퍼포먼스를 위해 국내 선수들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셈이다. 여론과 현장이 외면하는 단일화가 과연 누굴 위한 단일화인지 의문이 제기될 시점이다.
남북 단일팀이 더 이상 관계 개선의 매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전에도 수차례 이런 시도가 있었지만 북측의 도발로 관계가 악화된 경험이 있다. 남북의 긴밀한 대화와 합의가 없다면 단일팀은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도종환 장관이 언급한 ‘한반도기를 든 남북 공동입장’ 역시 정치인들 구미에 맞는 ‘보기 좋은 떡’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연설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말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단일화가 추진되는 지금, 그의 발언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