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부실한 환자안전 ②] 무사고 병원 만들기, 제도 개선으로 끝?

[여전히 부실한 환자안전 ②] 무사고 병원 만들기, 제도 개선으로 끝?

의료계, "환자안전 관련 인증·평가·보고체계 강화는 약 아닌 독"

기사승인 2018-02-17 01:00:00
<편집자주> 국민들은 몇 달 새 ‘환자안전’이 모래성 위에 쌓여있음을 목격했다. 이국종 교수의 귀순병사 치료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인해 중증외상센터, 신생아중환자실의 문제가 드러났다. 뒤이어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 사고에서도 중환자실 환자 결박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연이어 벌어진 환자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앞선 연재에서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장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이 중환(重患)이다. 당장 소생술이 필요한 혼수상태”라며 “한계에 다다랐다”고 평했다. 쏟아지는 업무와 늘어가는 책임, 잦은 이직과 퇴사로 인해 줄어드는 인력과 숙련도로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텨야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환자안전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심지어 “10년 전만해도 분발해서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겠지만 이제 그런 말은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환자실 의료진들이 사기를 잃은 지 오래다. 의료현장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양질의 의료는 불가능하다”면서 의료계만의 노력과 힘으로는 환자안전사고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임 회장의 설명처럼 환자안전사고를 막는데 한계를 느끼는 것이 중환자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발생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밀양세종병원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원과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진료과에서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크고 작은 사고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 연일 터지는 의료사고, 막지 못하는 예방장치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 비례대표)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료기관 등에서 자율적으로 보고한 환자안전사고는 환자안전법이 시행된 2016년 7월 29일부터 2017년 말까지 총 4427건이다. 하루에 9건이 발생한 꼴이다.

유형별로는 침대 등에서 떨어지는 낙상이 2117건으로 47.8%로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약물오류가 1282건(29%), 검사 290건(6.6%), 진료재료 84건(1.9%), 처치 및 시술 64건(1.4%), 수술 48건(1.1%), 환자 자살 및 자해 43건(1%), 감염 21건(0.5%) 등이 발생했다.

이 외에도 의료기관은 의료장비, 식사, 수혈, 마취, 전산장애, 탈원·폭력·화상·욕창·원인미상의 골절 등 15가지 환자안전사고를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을 통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으로 보고했다. 문제는 실제 발생하는 환자안전사고는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환자안전보고 자체가 의료기관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데다, 의료기관 내 전담조직인 환자안전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된 의료기관은 총 951개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2017년 말까지 50.8%(483개소)만이 설치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국회, 전문가들은 환자안전법 개정을 포함해 환자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세부적인 사항들을 정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에서는 의무조항과 처벌규정을 둬 환자안전을 확보할 최소한의 환경을 구축해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각종 환자안전을 위한 진료지침이나 규정이 만들어져 배포됐지만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현행 환자안전법은 안전사고의 자율보고에만 역점을 두고 있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 환자안전, 인증 및 평가 강화와 보고의무화면 OK?

일련의 주장에 더해 환자안전사고가 연일 발생함에 따라 정부는 의료기관 인증 및 의료 질 평가 중 환자안전영역을 강화하고, 사망사건 등 인명피해가 발생한 적신호 사고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대책이라며 내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자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의료기관이 이행해야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면서도 의무를 부여하거나 처벌을 동반한 강제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고를 감추거나 위험이 따르는 진료를 꺼려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더구나 각종 인증절차나 평가 등을 통해 환자안전사고를 방지할 최소한의 조건이나 환경은 대부분 갖춰져 있지만 사고를 완전히 막고 예방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특히 사고는 아무리 방지해도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완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학병원들이 JCI 인증을 홍보나 과시를 위해 받는 것이 아니다. 앞선 진료환경을 도입하고, 국내 요구수준 이상의 환자안전을 확보하고 있다는 노력의 결과이자 자기평가”라며 “사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라고 말했다.

이어 “개선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 스스로 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려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의료기관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당장 인력이나 시설, 장비가 부족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조치가 수두룩하다”고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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