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국민들은 몇 달 새 ‘환자안전’이 모래성 위에 쌓여있음을 목격했다. 이국종 교수의 귀순병사 치료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인해 중증외상센터, 신생아중환자실의 문제가 드러났다. 뒤이어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 사고에서도 중환자실 환자 결박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연이어 벌어진 환자안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 환자안전사고 핵심은 ‘기본’
# 2010년, 故 정종현 군(당시 8세)은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지막 항암주사를 맡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정맥에 놔야할 ‘빈크리스틴’ 주사제를 의료진이 실수로 척수강에 잘못 주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환자안전사고 자율보고체계 구축을 핵심으로 한 ‘환자안전법’이 제정됐다.
# 2014년, 故 전예강 양(당시 9세)은 코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받던 중 쇼크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의료진이 응급으로 수혈을 처방하지 않아 수혈이 지연됐고, 응급으로 하지 않아도 될 요추천차 검사를 무리하게 수차례 진행해 저산소증을 유발했다고 봤다.
반면 의료진 및 해당 대학병원은 의료과실은 없었으며 상세불명에 의한 저혈증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유족은 의료분쟁 조정중재 절차를 신청했지만, 병원 측이 동의하지 않아 결국 사건은 법적 다툼에 들어갔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지만 이후 사망사고 등 중대사건에 대해서는 의료분쟁 조정중재절차가 강제로 진행될 수 있도록 개선됐다.
# 2015년 다나현대의원, 2016년 원주 한양정형외과에서 C형간염 집단감염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두 사건 피해자만 500명에 달한다. 주요 원인은 주사기 재사용에 따른 감염확산으로 밝혀졌고, 피해자들은 지금도 치료를 위해 수천만원을 쓰거나 이마저도 부담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 외에도 200여명이 C형간염에 감염된 순창 집단감염사태, 335명이 역시 주사기재사용으로 C형간염에 감염된 서울JS의원 사태, 메르스(MERS) 등 감염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에 대한 감시체계 강화, C형간염 전수감시, 각종 감염병 확산방지를 위한 대책들이 마련됐다. 여기에 더해 C형간염 국가검진 시행을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 최근에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미숙아들이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입원한 환자들의 자해 및 자살사건, 화재 등 사고에 의한 환자들의 집단 사망사건이 이어졌고, 정부는 그때마다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눈물 흘리고, 육체적·정신적·물질적 피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사태가 연일 발생하자 의료계 전문가들이나 정부관계자, 시민사회단체 운동가들은 환자안전사고의 근본원인을 ‘시스템’ 즉, 의료서비스 체계에 두고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내놨다. 그에 따라 환자안전법이 제정됐고, 의료분쟁조정절차가 강제 개시될 수 있게 의료분쟁조정법이 개정됐다.
의료기관 시설기준 및 각종 평가지표가 변경됐고, 병문안 문화개선을 위한 캠페인도 이어지고 있다. 의료기관도 기준과 지표, 여론과 정책 변화를 수용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병실 구조개선, 음압병상 확보, 병동출입 차단벽 설치 등이 이 과정에서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환자가 안전하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실제 전문가들에게 일련의 변화가 완료되면 환자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들은 없었다. 지금보다 안전한 환경과 체계가 갖춰질 수는 있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사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이며 최대한 사고를 방지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고 의료서비스 종사자는 물론 환자와 보호자, 국민 개개인이 함께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환자안전사고, 해법은 ‘투자’
조윤미 C&I소비자연구소 대표는 환자안전사고의 핵심을 “의료진의 인식과 몸가짐과 같은 기본”이라고 설명하며 “아무리 선진적인 의료시스템을 갖춰도 환자안전사고는 결국 사람의 실수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실수를 줄이고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 대표는 “이와 같은 기본에 충실한 의료서비스를 실현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면서 국내 의료체계 전반에 걸친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강제하고 의무와 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 대표도 유사한 말을 남겼다. 안 대표는 “단순히 매뉴얼로 할 수 있는, 소위 ‘원칙을 지켜라’라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시설이나 장비, 인력기준 개선 등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살리는 치료와 환자를 죽지 않게 하는 것 모두 중요하지만 아직 국내 정책이나 관계자들의 관심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항암제 급여에 1조원을 쓰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환자안전에 1조원을 들이는 데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목소리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원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은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입장에서 비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2차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자안전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와 논의가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남식 대한민국의학한림원장은 세월호 사태를 예로 들어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에도 우리나라 사회안전에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대목동병원 사태나 메르스사태도 마찬가지다. 안타깝지만 병원 운영자들은 언젠가 터질 것이 터졌다고 말하며 또 다른 형태로 터질 것이라고 걱정한다”고 의료계에 팽배한 문제의식을 전했다.
이어 “전공의나 주치의, 간호사를 구속시키고 의료기관에 제재를 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환자안전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사람들의 인식에 일침을 가하며 “근본적으로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환자안전을 담보할 체계나 기준이 지켜지게끔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병원을 지원하며 의료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성토했다.
결국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환자안전이 담보될 수 있는 빈틈없는 지침과 규정을 만들고, 임상현장의 일선에서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함께 죽지 않게 지킬 수 있도록 인식을 강화하며 환경을 조성해야한다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고양이 목에 금방울 달기’… 누가? 어떻게?
하지만 방법을 알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듯하다. 안 대표는 환자안전을 ‘재정투입’과 대응했고, 조 대표나 의료계 전문가들도 ‘투자’라는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의 해결책이자 현실적 장벽을 거론했다.
환자안전이라는 포괄적인 단어에 포함된 현실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개념과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을 하나하나 재정립하고 개선하기에는 천문학적인 자원과 노력이 소요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단순하게만 나눠도 낙상·폭행 등 의료기관 내 사건사고를 비롯해 감염관련 사고, 의료행위별 장소별 환자안전대책은 달라진다. 당장 입원실, 병실, 처치실, 수술실, 외래진료실,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 따라 필요한 인력과 구조가 모두 다르다.
감염 혹은 사건사고로부터 환자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와 보고체계, 예방 및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도 모두 고민해야하는 문제들이다. 시술 혹은 수술행위별 환자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이와 관련 한 의료기관 내 환자안전위원회 관계자는 “모든 대책을 수립하고, 병원에 적용해 운용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자원이 소요된다”며 “과거처럼 양심과 의무로 의료진과 의료기관에 모든 부담을 감당하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의료기관 내 PI(Performance Improvement)팀 관계자는 “환자관리료, 감염관리료 등 일부 수가가 지급되지만 대부분 환자안전이나 감염관리 활동이 열정페이”라며 “사고가 발생할 경우 병원의 경영실적을 비롯해 대외적 이미지에 큰 타격이기에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지원 없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의료기관의 불만과 어려움에 대해 한 환자안전 관련 전문가는 “사실 세세한 부분에 부족한 점은 있지만 지금도 충분한 지침과 규정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를 지킬 인력이 부족하고 국가나 병원의 지원과 투자가 미흡할 뿐”이라며 “기본은 사소한 사안까지 모두 보고하고 공유하며 개선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와 의지를 북돋을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