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비이성적·수용적 네티즌’…경찰 댓글공작 파장은?

[친절한 쿡기자] ‘비이성적·수용적 네티즌’…경찰 댓글공작 파장은?

‘비이성적·수용적 네티즌’…경찰 댓글공작 파장은?

기사승인 2018-03-13 13:20:52

일상에 얽매여 순순히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항민(恒民). 허균은 호민론에서 항민을 권력자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기 때문에 호민(豪民)이 없다면 변화를 꾀할 리가 없다고 본 것이죠.

400년 후, 항민은 ‘비이성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일반 네티즌’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 8월18일 경찰청 보안2과에서 작성했다는 문건을 12일 공개했습니다. 해당 문건에는 ‘비이성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일반 네티즌에게 이슈별로 효율적 대응을 통해 건전한 인터넷 여론형성 및 사회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같은 해 4월18일 작성된 또 다른 문건에는 ‘안보 현안과 관련하여 건전한 여론조성을 유도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죠. 건전한 여론형성이란 사실상 인터넷 댓글 공작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댓글공작이 ‘선거개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찰도 이러한 위험성을 미리 인지했습니다. 이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인터넷 여론조작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수단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유의사항이 명시돼 있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댓글공작은 엄정하게 처벌해야 할 범죄입니다. 앞서 MB 정부의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선거 기간 친정부·반야당 성향의 댓글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습니다. 관련자들은 선거법 위반과 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오는 6·13 지방선거에 대비해 여론조작을 주요 선거 범죄로 규정,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구속수사 하겠다고 밝혔죠. 범죄를 수사해야 할 경찰이 직접 여론조작에 나섰다면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무너트리는 일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경찰이 네티즌 등 시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경찰은 문건에서 비이성적이고 무조건 수용적이라는 수식어를 네티즌에게 붙였죠. 시민의 요구에 언제나 신속히 대응하고 수호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지니기에는 부적절한 생각이라는 질타가 일었습니다.     

경찰은 지금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경찰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사유화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견(犬)찰’로 불리며 폄하됐죠. 지난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무리한 시위 진압으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잘못된 물대포 사용으로 고(故)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찰은 쇄신을 약속했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해 7월 고(故) 백남기 농민과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열사들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지난 1월 정부업무보고에서는 “치안활동 전 영역에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인권은 강화하고 경찰의 권한은 분산, 통제하는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권력자의 불호령이 아닌 시민의 불신입니다. 시민은 경찰 문건에 묘사된 것처럼 ‘비이성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지지난 겨울 시민들은 생각하고, 비판하고, 결국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시민의 신뢰 속에서 공권력도 온전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경찰이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이번 댓글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신뢰의 기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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