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혐의를 받는 국가정보원(국정원)장들이 “유용될 줄 몰랐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15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피고인석에 선 이병기 전 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올려드린 돈이 제대로 된 국가운영을 위해 쓰였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기대와 반대로 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에 나온 이병호 전 원장은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며 제도의 문제점을 탓했다. 그는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원장됐다면 제가 아닌 그 분이 아마 법정에 섰을 것”이라며 “개인 비리적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미비한 제도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나라이면 국정원장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바치는 나라겠느냐”면서 “저는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남 전 원장은 변호인의 의견 외에는 따로 입을 열지 않았다.
3명의 피고인은 모두 청와대에 국정원 특활비가 전달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지급한 돈이 국정운영에 사용될 것으로 알았다”며 대가성과 고의성 등을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남 전 원장과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으로부터 매월 5000만원~2억원씩 총 35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수수한 혐의로 지난 1월 추가기소됐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요구해 지난 2016년 6월부터 8월까지 매월 50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을 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지원하도록 요구한 혐의도 있다.
수수한 특활비는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면서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및 핵심 측근들이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구입 및 통신비,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 관리 및 수리비, 기치료 및 주사 비용 등으로 3억6500만원이 쓰였다. 이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등에게 격려금으로 9억7000만원을 지급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