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 진출 팀이 결정됐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 리가)는 16강에 오른 3개 팀이 고스란히 8강에 합류한 반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는 5개팀 중 2개 팀만이 올라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밀레니엄 이후 이른바 ‘슈가 대디’의 거대한 투자가 잉글랜드 축구에 쏠렸다. 대표 인물로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이 있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뒤 폭발적인 영입을 감행했고, 지금은 리그를 넘어 유럽무대 재패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외에도 글레이저 가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만 아브라모비치(첼시 FC), 알리셰르 부르하노비치 우스마노프(아스날 FC) 등이 EPL 구단 경영에 뛰어들었다.
EPL 구단들은 지난 수년간 유럽 챔피언 자리를 되찾기 위해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쏟았다. 돈이 한 곳에 모이자 타 리그에서 활약하던 그라운드의 지배자들이 EPL로 향했다. 무리뉴, 과르디올라, 클롭 등 스타 감독들도 대거 잉글랜드로 향했다.
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조사에 따르면 EPL은 지금의 선수단 구성에 무려 57억 유로(약 7조 5234억원)를 썼다. 이는 2위 이탈리아(24억 유로) 대비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난해 겨울 EPL은 이적료로 4억3000만 파운드(약 6408억원)을 투자했다. 지난 시즌 쿠티뉴 등을 영입하며 적잖은 돈을 쓴 라 리가(2억5000만 파운드)에 약 1.7배 많은 액수다.
슈퍼스타가 모이자 자연스레 EPL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다. ‘딜로이트’는 2017-2018시즌 EPL 소속 20개 클럽의 총 매출이 45억 파운드(약 6조7081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EPL 소속 14개 팀이 전 세계 축구클럽 수입 ‘TOP 30’에 들었는데, 이는 2위 이탈리아 세리에A(5개)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다. 그 뒤로는 독일 분데스리가(4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3개) 순이다. EPL 구단의 순 부채는 3시즌 연속 하락세다.
그러나 이번 UCL 16강에서 EPL의 생존률은 40%였다. 반면 라 리가는 100%다. 돈이 곧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음이 증명된 셈이다.
이 같은 EPL의 투자-성적간 괴리를 ‘조직력 부재’에서 찾는 분석이 많다. 선수·감독 유동성이 많은 만큼 팀이 융화될 시간이 없었다는 거다. 과르디올라와 무리뉴, 콘테는 지휘봉을 잡은 지 2시즌이 채 지나지 않았다. 클롭은 2015년 10월, 포체티노는 2014년 5월 팀에 합류했다. 아울러 앙리, 제라드, 람파드, 루니 등 프렌차이즈 스타라 할 만한 선수가 없는 것도 팀 조직력 강화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잘 하는 선수를 ‘매집’하는 방식의 스쿼드 구성도 문제다. 바르셀로나와 같이 유스에서 성인팀으로 올라가는 선수 비중이 높은 경우 선수의 충성도와 팀 조직력이 자연스레 개선돼 짜임새가 생긴다. 반면 EPL의 상당수 팀들은 타 팀에서 잘 하던 선수를 영입하는 방식으로 라인업을 구성하기 때문에 팀 융화는커녕 위화감이 조성된다. 실제로 EPL에서 잦게 발생하는 감독-선수간 불화와 태업논란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EPL 구단의 가장 최근 UCL 우승은 2011-2012시즌이다. 당시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이 이끈 첼시는 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5개 대회에서 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번갈아 하며 4차례 우승컵을 들었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이 1번이다.
이번 시즌 리그에서 파죽지세를 이어가고 있는 펩의 맨체스터 시티는 UCL 우승후보 중 하나로 거론된다. 축구 전문가들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맨체스터 시티의 5파전을 예상한다. 과르디올라는 이미 UCL 우승컵을 든 경험이 있다. 단기 토너먼트에서 성과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그가 EPL에 덧씌워진 ‘과열 리그’의 오명을 씻어낼지 지켜보는 것은 이번 대회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