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면 영화 ‘곤지암’(감독 정범식)을 보는 것이 좋다. 한국 공포영화도 외국처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94분의 러닝타임 동안 입증한다.
‘곤지암’은 일곱 명의 청년들이 CNN 선정 7대 소름끼치는 장소에 선정된 곤지암 정신병원을 체험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전문적인 장비를 무기로 치밀한 계획을 짜서 공포체험을 하는 유튜브 채널 호러타임즈가 주축이 되어 곤지암 정신병원 체험을 하는 내용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의 셀프카메라로 전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왔다. 각자의 얼굴을 개인카메라에 CCTV까지 많을 때는 19대의 카메라가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초반부 10분의 과감한 전개와 설정이 ‘곤지암’의 색깔을 가장 잘 말해준다. 휴대전화 영상과 유튜브 영상,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오가며 익숙한 현장감을 최대한 살렸다. 감독과 작가의 목소리와 시선이 잘 드러나지 않아 인물들의 이야기와 상황에 쉽게 몰입된다. 일곱 명이나 되는 인물과 영상 콘텐츠를 촬영한다는 설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외국 공포영화의 느낌들을 한국에 맞게 변형하거나, 이야기 구조를 고민한 흔적들도 눈에 띈다. 자의적으로 체험에 참가했음에도 그곳에서 나가지 못하는 자발적 밀실 설정이나, 페이크 다큐멘터리 속에 또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찍는 설정도 신선하다. 대신 배우의 느린 움직임과 과한 음악, 효과음으로 놀라게 하는 한국 공포영화의 고정 패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무섭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보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덕분에 티격태격하며 각자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았던 청년들은 어느 순간 개성을 잃고 균일한 존재로 돌변한다. 1970년대 영상과 사진, 굳게 닫힌 402호, 조회수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을 조합하면 감독이 어떤 마음으로 ‘곤지암’을 만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오는 28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