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대통령이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국가적 추념행사로 위상을 높이겠다”는 후보자 시절의 약속을 지켰다.
70년 전 제주의 4월, 유채꽃과 동백이 만발한 땅에서 이유도 모른 채 수많은 생명이 희생됐다.
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식은 사상과 이념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생명을 기억하고 상생과 화해의 역사로 나아가는 걸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행방불명인 표석 및 위패봉안실에 방문해 동백꽃과 술 한 잔을 올렸다.
이어 추념식 최초로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함께 헌화 및 분향을 진행했습니다. 김정숙 여사는 4.3을 상징하는 동백꽃을 헌화했다.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이번 추념식의 슬로건이다. 제주 4.3이 제주도에 국한된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억이자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추념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의미를 담은 다양한 추모공연도 진행됐다.
이번 추모공연은 4.3을 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애국가 제창을 이끌고, 애국가 영상도 제주도의 모습으로 편집해 국민의례에까지 제주 4.3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350여 명이 희생된 북촌희생사건을 모티브로 소설 ‘순이삼촌’을 써서 제주 4.3을 전국에 알린 소설가 현기영의 추모글을 낭독했다. 또한 제주 4.3 추모곡인 ‘4월의 춤’을 만든 가수 루시드폴의 노래에 맞춰 제주도립무용단의 공연이 진행됐다.
작곡가 김형석의 연주를 배경으로 제주도민인 가수 이효리는 이종형 시인의 ‘바람의 집’, 이산하 시인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김수열 시인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등 세 편의 시를 낭독했다. 가수 이은미는 가수 이연실의 ‘찔레꽃’을 부르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행사의 마지막은 제주4.3 유족 50명으로 구성된 4.3평화합창단이 제주도립합창단, 제주시립합창단과 함께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해 추념식의 의미를 더 깊게 새겼다.
특히 이관석 희생자의 유족인 이숙영씨가 유족 편지를 낭독해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총살당한 아버지, 바다에 수장당한 큰오빠, 그 한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신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이다.
<설움을 딛고 희망으로>
이숙영(이관석 희생자의 유족)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늘 제 가슴속에 살아 계신 어머니!
굳은 신념과 열정으로 교육에 헌신하던 아버지가
4.3사건으로 끌려가 사라봉 기슭에서 총살당하시던 날
산등서이 맴돌던 까마귀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저 하늘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학살했는지 그 경위를 밝혀 달라.”
울분을 참았다가 밤이면 쏟아내는 흐느낌
“어머니, 밤에 무사 울언?” 묻지 못하고
여섯 살 막내는 설움으로 철들며 자랐습니다.
제주도 최초로 교악대를 창단하며 음악 교육에 앞장 섰던 큰오빠가
예비검속으로 끌려가 바다에 수장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날
“집안의 주춧돌이 무너졌다.” 그 애끊는 통곡의 소리를
저 바다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짧은 운명 대신하여 오빠의 비석 옆에 심어놓은 무궁화는
시대의 아픔을 잠재우며 해마다 피어나는 영혼의 꽃.
사삼사건·예비검속·행방불명·그리고 연좌제
이 아픈 단어들을 가슴에 새긴 채 숨죽이며 살아온 70년!
이제, 밝혀지는 4·3의 진실, 바로 세워지는 4·3의 역사 앞에
설움을 씻어내며 부르게 될 희망찬 노랫소리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니!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는 날
마디마디 맺힌 한(恨)을 풀어놓으시고 편히 잠드십시오.
2018년 4월3일
평화공원에서 막내가 올립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사진=청와대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