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으로 시작된 부부의 1년 여행 '비아헤 꼰띠(Viaje conti)'

약속으로 시작된 부부의 1년 여행 '비아헤 꼰띠(Viaje conti)'

기사승인 2018-05-21 11:18:42


'여행의 시작은 약속이었습니다. 2009년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속된 안데스여행, 정확히는 우유니사막 버스터미널에서 처음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우리 부부는 “언젠가 다시 우리가 만났던 그 곳으로 꼭 한 번은 가자”고 약속 했습니다.' (중략)

대구일보 김승근 기자가 약속 여행을 그린 책을 펴냈다. 스페인어로 비아헤 꼰띠. 우리말로 해석하면 ‘당신과 함께 여행을’이란 의미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녀가 2010년 각자 따로 남미 여행을 왔다가 볼리비아 우유니소금사막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르게 되고 이들이 ‘언젠가’ 첫 만남의 땅으로 한 번 더 가자고 한 약속 여행을 그린 책이다. 

군데군데 현지인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일반 여행서적과는 달리 눈길을 끈다.
 
특히, 작가는 2003년, 2009~2010년 이어 2016년 세 번에 걸쳐 14개월간 남미의 일상을 체험하며 느낀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책은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상황까지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다.

여행 지역별로 총 9개의 구역으로 나눠 구성돼 있다. 남미, 중미, 캐나다, 북유럽, 동유럽, 발칸반도, 영연방, 남유럽, 서유럽 등이다. 

2개 구역이지만 여행 기간은 7개월로 절반이 넘었던 남미와 중미의 첫 시작은 안데스산맥이 걸쳐져 있는 나라들이다.

▲‘머리가 절로 숙여지는 파타고니아에서 여행은 시작되고’
첫 번째 챕터는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는 나라’이자 여행의 출발지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모레노빙하를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고 침묵하는 것만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할 수밖에 없는 엘찰텐에서의 트레킹 그리고 이과수폭포에서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갈 듯 한 짜릿한 경험 등을 다룬다.

마약탐지견 검사만으로도 국경을 넘어 들어간 칠레에선 현지 돈을 못 찾아 걸어서 ‘숙소 찾아 삼만리’를 했던 일, 화산휴양지 푸콘에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방 예약이 잘못돼 노숙자 신세가 될 뻔했던 일, 호스텔 방문객이 남긴 한자 인사말 해석을 못해 4년을 기다린 주인 할머니에게 뜻풀이를 했던 일 등을 담았다.

여행의 출발점이자 의미였던 부부의 첫 만남의 장소인 우유니사막이야기로 시작되는 볼리비아편에서는 수크레에서 소매치기를 당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골프장인 라파스 골프클럽에서 라운딩을 한 뒤 폭우 속에서 데스로드 자전거트레킹을 완주한 이야기를 그렸다.

티티카카호수를 거쳐 잉카의 배꼽인 쿠스코 그리고 남미 비밀의 집성체라고 할 수 있는 마추픽추를 거쳐 수도 리마에서 휴식을 취한 페루를 넘어 세상의 중심에서 고도 때문에 추위에 떨어야만 했던 에콰도르 키토까지 48시간 꼬박 버스를 탄 사연이 이어진다.

에콰도르에선 남미 최대의 수공예품 시장인 오타발로와 백두산 천지보다 1천m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칼데라호인 킬로토아호수를 둘러보고 미녀들의 나라이자 마약카르텔로 유명한 콜롬비아에 입성해 미드의 주인공인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삶을 추적하기도 한다.

▲‘카리브해안선을 따라 마야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파나마,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멕시코 이곳저곳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쿠바와, 마카오를 적당히 섞었는데 뭔가 부족한 듯한 파나마와 사랑 때문에 파나마로 왔지만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남편의 이름을 신문의 부고란에서 봐야만 했던 교포인 주피 아주머니의 눈물섞인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살인적인 물가임에도 행복지수 1위라는 가면을 쓴 코스타리카에서 마야의 전설이 가장 많이 숨어 있는 과테말라로 날아가 여자들만이 재배하는 세계 유일의 커피농장인 필라델피아농장에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독재정권을 피해 온 가이드 로저도 만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혼여행 희망 1순위 지역이 된 멕시코 칸쿤 카리브해에서 몸을 던지고 멕시코 마리아치의 산실이자 미녀들이 가장 많은 과달라하라를 들러 미세먼지로 차량 2부제를 하는 태양의 나라의 수도 멕시코시티로 들어간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란 마지막 말을 남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삶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서 그녀를 만나고 프로레슬링의 원조 루차 리브레 경기장에서 악역을 맡은 레슬러를 향해 ‘욕’을 남발하기도 한다.

▲타이타닉의 사랑이 묻힌 뉴펀드랜드에서 드라이브를
‘88km를 직진하다가 우회전 하세요’란 내비게이션 멘트를 들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물이 깨끗하다는 토버모리에서 나이아가라폭포를 구경한 뒤 토론토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뉴욕양키스와의 메이저리그 야구경기를 본다.
이어 찾아간 곳은 북미대륙에서 가장 멋진 드라이브코스 중 하나라는 라이트하우스루트. 핼리팩스 인근인 페기스코브-마혼베이-루넨버그를 돌면서 대서양의 바람을 맞는다. 

▲쉬이 마주서지 못하는 궁극의 깨끗함 그리고 투명함
이젠 유럽 그것도 여름이 아주 짧은 북유럽이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유라시아와 북미를 가르는 경계판이 있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명예직인 대통령을 만나려고 찾아갔을 때 “축구경기 보러 파리에 갔다”는 대답을 들은 일, 슈퍼마켓에서 파는 생수보다 수돗물이 더 맛있는 오슬로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뭉크의 절규를 보고 감흥에 젖은 것도 잠시, 피오르의 중심에 아찔하게 자리잡은 바위산 펄핏록에서 다리를 후들거리며 아래를 내려다 보던 모습이 생생한 노르웨이 여행.

꼭 다시 부인과 함께 와서 댄싱 퀸(Dancing queen)을 부르겠다고 약속했던 아바박물관에서 무대에 올라 댄싱 퀸을 부르고 ‘마녀 배달부 키키’의 배경이 된 고틀란드 섬에서 여름 벼룩시장을 구경한 일, 포장마차로 구성된 마켓광장에서 오징어튀김을 배터지게 먹은 돈이 한식당 소주 한병 값인 3만5천원 보다 쌌던 헬싱키의 기억까지. 

▲쉿! 소리를 낮추고 그저 보기만 하세요
과거 공산주의의 심장이었던 러시아에서부터 라트비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조지아까지 아직도 비밀이 곳곳에 숨어있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 곳곳에 숨겨진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양파처럼 까도까도 나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페라를 감상하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걸었던 코쿠시킨 다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간다. 

유럽 속 아름다운 유럽인 라트리바 리가에서 스토리텔링의 정수를 느끼고 2차 대전의 상처가 가장 컸던 폴란드 바르샤바로 들어간다. 공항에서부터 건강보조식품까지 그의 이름을 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쇼팽의 고향인 바르샤바의 재건을 보고 6명이 한 객차에 타고 내린 옛 수도 크라쿠프 그리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비극의 아이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눈물을 흘린다.

우리 술 막걸리는 3등급, 소주는 ‘정체모를 술’로 분류돼 가장 나쁜 주류 등급인 5등급을 받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어느 소녀의 죽음’을 기리고 터키만큼이나 많다는 온천에서 여행의 피로를 푼다.

실비 바르탕의 ‘마리차강변의 추억’ 멜로디를 읊조리며 도착한 소피아, 기독교 나라임에도 우리 선교사들이 선교라는 미명 아래 이해되지 못할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교민들과 함께 분개하고 24시간 카페는 물론 24시간 은행업무까지 보는 코카서스의 프라하라고 불리는 조지아의 트빌리시 길거리 책방에서 책구경도 한다. 

▲내전으로 갈라진 대지 위 피어난 들꽃을 따라 아드리아로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이름만으로도 내전의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발칸의 화약고들을 한 바퀴 돌면서 느낀 점들을 기자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담았다. 

유럽 한복판에 있지만 시민 두 명 중 한 명이 무슬림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총탄 자욱이 선명한 건물들을 봤던 기억, 프로축구선수에서 이젠 사업가로 변신하고 있는 내전의 피해자 엘딘 발리치와의 인터뷰, 몬테네그로 부드바에서 숙소를 눈앞에 두고도 못찾아 두 시간 동안 헤매던 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워터프론트 프로젝트로 만들어지고 있는 주거단지 모델하우스를 찾아 베오그라드의 30년 후 미래를 그려보던 모습, 독립에 도움을 줬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동상이 있는 코소보의 프리슈티나, 노숙자 동상까지 있던 동상의 천국이자 테레사 수녀의 고향 마케도니아 스코페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켈틱인들의 전설은 북대서양 거친 파도에 밀려
금방이라도 “이보게 왓슨”이라고 뒤에서 부를 것만 같은 홈즈의 이야기가 있는 셜록홈즈 박물관, 몇 번 봤지만 질리지 않은 맘마미아 뮤지컬을 노벨로씨어터에서 보고 런던을 떠나 더블린 공항에 내린다.

공항에서 차를 빌리자마자 오른쪽 운전석에 대한 주의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아일랜드 사람들. 특유의 고집은 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영화 ‘원스’의 배경인 나라답게 거리마다 버스킹은 기본이고 펍에도 입과 귀가 항상 즐겁다. 클리프 오브 모허, 드라이브코스인 딩글의 바다를 돌아 제임스 조이스의 고향 더블린으로 다시 돌아와 기네스스토어에서 맥주제조자 인증서를 받는다.

이젠 영국 속의 또다른 영국 스코틀랜드의 풍광을 만나러 간다. 영국 북쪽 끝 등대인 던칸스비헤드에서 아래 하이랜드에서 007 스카이폴의 배경인 글렌코 계곡에서 석양을 바라본다. 
글렌피난비아덕트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마법의 증기기관차를 보고 넋을 놓고 있다가 골프의 발상지인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바람을 맞으며 라운딩을 한다.

▲고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지중해를 감싸고
터키, 이탈리아, 그리스, 모로코, 모나코 이야기로 이어진다. 형제의 나라라고 떠드는 사람들에게서 불쾌한 일을 여러 번 당하면서 떠난 터키의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잠시, 마피아의 본산이자 세계 최고의 올리브를 자랑하는 시칠리아 섬으로 배에 실린 기차를 타고 들어간다. 경제 악화로 마피아는 이탈리아 본토로 떠나버리고 돈을 찾아 고국을 떠나온 무슬림 난민들만 늘어가는 시칠리아. 

작가는 한때 마피아의 본산 중 하나였던 시라쿠사의 숙소 주인이 길 떠날 때 내민 작은 올리브유와 고체 우유는 감동 그 이상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50년이 다 되어가도 여전한 영화 대부에 나왔던 바(bar)와 성당 그리고 어딜가나 들려오는 대부의 주제음악. 
신의 도시에서 인간의 도시가 된 그리스 아테네와 자칫하면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을 뻔했던 아프리카 모로코의 메디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을 가진 그레이스 켈리의 모나코까지를 이야기 한다.

▲별이 쏟아지는 아를에서 옷 벗는 마야가 있는 마드리드까지
독일 베를린에서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를 한데 모았다. 하루가 다르게 좀 더 ‘위험하게’ 변하는 베를린에서 여전히 좋은 맛을 유지하는 호프브로이의 고향 뮌헨을 넘어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도시경제를 견인하는 잘츠부르크, 스파이의 천국 비엔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라도미술관이 도시의 아이콘이 된 스페인 마드리드와 가우디와 구엘이 사랑한 바르셀로나, 살아생전 단 한 점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고흐의 아픔이 있는 남프랑스 아를, 겨울비 내리는 파리와 룩셈부르크. 수제맥주와 와플이 일품인 벨기에 브뤼헤.

그리고 귀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의 겨울 풍경을 작가는 다섯 번째 찾은 유럽여행답게 과거와 비교하면서 담담히 그려간다.

대구=최재용 기자 gd7@kukinews.com
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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