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로 내부 감사에 허점을 드러낸 KB국민은행의 상임감사 공백이 장기화돼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2015년 지배구조 문제로 정병기 전 상임감사가 사임한 이후 채용비리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상임감사 공백에 따른 내부통제 우려가 크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 2015년 1월 정 전 상임감사가 사임한 이후 햇수로 4년째 상임감사가 공석이다. 상임감사는 조직 내부비리를 감시하거나 회계업무를 감독해 경영진을 잘못된 경영을 견제하는 막중한 자리다. 주로 ‘룰’에 깐깐한 정부 관료 출신이 많이 선임된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4년 주전산기 교체를 두고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의 갈등이 확대된 ‘KB사태’로 상임감사 자리를 비워두고 있다. 당시 주전산기 교체의 문제점을 알린 정 전 상임감사가 갈등 확대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KB사태 이후 취임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은행장을 겸직하면서, KB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외부 낙하산 상임감사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상임감사 자리를 비워뒀다. 그에 따른 상임감사 업무 공백은 감사위원회가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가 일단락되면서 국민은행의 내부 감사에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의 수사결과 국민은행 감사위원회가 상임감사를 대신한 2015년부터 신입행원 및 인턴 채용 과정에서 청탁대상자들의 자기소개서 평가등급을 높이거나 면접점수를 조작해 합격시킨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민은행에서는 2015년 신입 채용 당시 서류전형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높게 나타나자 남성지원자 113명의 자기소개서 평가등급을 높여 합격시키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등급을 낮춰 불합격시키는 등 남녀차별 채용 혐의도 적발됐다. 이러한 혐의에 따라 국민은행 이모(59) 전 부행장 등 인사 담당자 4명이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금융당국은 은행 채용비리 사태의 원인이 은행의 내부통제 부족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함께 마련한 은행 채용 모범규준에는 채용절차에 대한 감사나 특별위원회의 채용절차에 대한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국회 제출을 앞두고 있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이러한 내부감사 업무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임감사와 관련해서는 상임감사를 선임하지 않을 경우 내부감사책임자를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감사업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사업무를 진두지휘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당국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역할 없는 자리는 없다. 상임감사는 상임감사 대로 중요할 역할을 하고 있다”며 “상임감사가 필요없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은행권 일각에서는 윤 회장이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사이 채용비리 등 내부 문제를 단속할 ‘골든타임을 잃었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상임감사가 있다고 해서 채용비리를 100%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병기 전 감사가 비리에 상당히 외골수적인 면모를 보인 만큼 채용비리가 예방됐을 수도 있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국민은행 내부에서도 이제 상임감사 선임을 통한 내부통제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지난 4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효율적인 내부통제를 위해 상임감사가 꼭 필요하다”며 상임감사를 선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다만 허 행장의 발언 이후 국민은행의 상임감사 선임권은 이사회로 넘어갔다. 국민은행 측은 현재 이사회에서 상임감사에 적합한 인물을 ‘수배 중’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현재 상임감사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보고 있다”며 “상임감사를 선임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