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주사제, 낭비되는 의료자원

버려지는 주사제, 낭비되는 의료자원

기사승인 2018-06-26 09:00:00

지난해 12월, 이화여자대학교 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하나의 지질영양주사제를 여러 주사기로 나눠져 실온에 보관됐다. 수 시간이 지난 후 나눠진 주사들은 5명의 신생아에게 주입됐다. 그리고 4명의 아이가 사망했다. 주사제가 오염돼 패혈증을 유발한 것.

사건이 발생한 후 의료기관들에서 주사제 관리방침이 달라지고 있다. 문제는 ‘관행’이라고 불리는 행위가 없어지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명확한 지침이나 기준이 없어 일부 병원에서 만전을 기한다며 지나치게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서다. 

부산에 살고 있는 Y(66)씨는 병원들의 달라진 주사제 관리방침의 피해자다. 그는 2년 전부터 얼굴 한쪽 부위의 눈이나 입이 수시로 떨리는 편측 안면 경련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눈꺼풀이 심하게 떨리는 안검경련에 시달리며 사람들과의 만나기를 꺼리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집 밖 출입을 편히 했다.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늄 톡신 주사를 맞으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증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Y씨는 다시 친구들과 만남을 가지고 운동을 다니는 등 바깥출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단꿈은 이대목동병원 사태가 벌어진 후 깨졌다. 주사를 맞으러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주사를 놔주지 않았다. 따지듯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주사제가 비급여고 다소 고가이기에 환자를 모아 나눠 맞았는데, 병원 방침이 바뀌어 이젠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병원들도 대동소이했다. 그나마 부산의 또 다른 대학병원에서 주사를 놔준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이곳에서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면 약국에서 직접 가져와 다시 외래를 통해 처치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Y씨는 진찰료를 제외한 수술처치료와 주사행위료, 약품비 등을 전액 본인이 부담하며 약을 맞았다. 뇌수술을 하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엔 없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에서 환자는 과거에 비해 비용을 추가로 부담했고, 주사 후 남은 주사제는 버려졌다.

그는 “나이 때문에 수술을 받기 어려워 주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돈은 돈대로 다 내고 남은 약은 버려진다”며 “낭비다. 아깝다”고 말했다. 이어 “잘 놔주던 주사는 또 왜 갑자기 안 놔주는지 모르겠다”면서 병원의 대처에 불만을 토로했다.


문제는 비단 특정 약제 혹은 질환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범용적이며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포도당 수액도 낭비되고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수액이 절반이상 남았어도 새 수액으로 교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곳 간호사들은 수액을 맞고 있는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고, 버려지는 수액만 모아도 온전한 수액 수십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 차고 넘쳐 보였다. 그럼에도 냉정했다. 환자들의 아깝다는 반응에 오히려 환자를 위하는 일이라며 과감히 폐기했다.

이와 관련 한 간호사는 이유를 “이대목동병원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대목동병원에서의 주사제 관리소홀이 사태를 불러온 만큼 이를 방지하고자 하루가 지난 수액을 같은 시간에 교체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됐다는 설명이다. 이어 “환자들은 조금 번거롭고 남은 약이 아깝긴 하겠지만, 오히려 감염위험을 줄일 수 있는 조치”라며 따라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한 의료계 관계자는 “맞고 있는 수액이 오염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대목동병원 사태 후 벌어지는 의료기관에서의 과도기적 행태”라고 풀이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으며 최대한 매사에 조심하며 하나씩 체계를 갖춰가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수액이나 주사제 등의 폐기는 환자입장에서 의료자원이 낭비되는 것 같아 아까울 수 있지만 이뤄져야하는 일이며 낭비라기보다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올바른 조치로 봐야한다”고도 말했다. 무엇보다 하나의 약제를 여러 사람이 나눠 쓰고,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행위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명확한 기준이나 지침의 부재에서 오는 낭비로 보기도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부 의료기관에서 이처럼 감염문제 등을 이유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등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제할 수는 없지만 관심을 갖고 의료자원의 낭비나 오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만 “부당이득을 취하는 병원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며 “의료기관에서 남은 수액이나 약제를 폐기하는지 재사용하는지 알 길이 많지 않다. 일일이 모니터링하고 관리하기도 힘들다”면서 현실적인 한계가 있음을 거론했다. 이어 감염관리와 자원의 낭비, 환자와 사회의 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관심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오준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