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가 주요 성과로 의료개혁과 연금개혁을 꼽았다. 윤 대통령이 내세운 4대 개혁 과제 중 정치·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이 일었던 이슈다.
이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평가는 분분했다. 연금개혁의 정부 단일안을 21년 만에 제시하고, 27년 만에 의대 증원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다만 연금개혁이 국회에서 공회전하고 있으며, 의료공백이 길어지는 점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 정부 보건복지 분야 주요 성과 및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연금개혁 △저출생 총력 대응 △두터운 약자 복지 △바이오·디지털헬스 산업 육성을 5대 성과로 언급했다.
이 차관은 “정부는 27년 만에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1509명 확대했다”며 “연내에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실손보험 구조개혁 방안을 담은 의료개혁 제2차 실행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금개혁에 대해서는 “2003년 이후에 21년 만에 단일화를 한 연금개혁안을 드디어 마련했다”며 “연금개혁이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다만 의료개혁과 연금개혁 모두 미완인 점을 의식한 듯 추진 의지를 내비쳤다. 이 차관은 “정부는 전공의 이탈 후 미복귀 등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계를 끝까지 설득하겠다”며 “연금개혁은 차질 없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국민과 소통하고 국회 논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의료개혁] “의료현장 엉망” vs “의대 증원 관철, 높이 평가”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매년 2000명씩 향후 5년 간 1만명을 증원한다는 계획이다. 의대 증원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다만 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의대 증원 계획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전공의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들고 일어났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하며 응급실 뺑뺑이, 진료 차질 등 의료 공백이 10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추진하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정책은 아직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 지역·필수의료 보장을 위한 공공 정책 수가 신설, 중증·응급 등 필수의료에 1조2000억원 투자 계획 등을 공개하며 지원 강화를 위해 팔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떠난 뒤 의료 공백이 여전한 상황이라, 해당 정책들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공보이사인 고범석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현재 의료 현장은 ‘망해가고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이 엉망”이라며 “환자 진료·수술이 모두 밀리고, 병원 상황도 좋지 않다. 모든 수치가 나쁜데, 성과라고 할 게 있겠나”라고 짚었다.
반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증원을 포함해 그간 미뤄졌던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높게 평가한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사업 역시 개혁의 모멘텀을 잘 살려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이 일부 후퇴하는 건 아쉽다”며 “전 정부에서 한 MRI·초음파 지원 확대(문재인 케어) 등이 잘못된 것처럼 호도되는 것은 과하다”고 지적했다.
[연금개혁] “추진 의지 없어 보여” “후속 조치 부족”
정부는 지난 9월, 21년 만에 연금개혁안 단일안을 내놨다.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단계적으로 13%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2%로 유지하는 내용이다.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 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 지급보장 명문화 등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단일안을 내놓기까지 우여곡절은 있었다. 지난 5월,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 조정(모수개혁안)에 대해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구조개혁’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협상이 끝내 불발됐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정부안엔 구체적인 구조개혁안이 담기지 않아 비판이 제기됐다.
연금개혁안을 통과시킬 국회 논의도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여야는 아직 연금개혁안을 어떤 기구에서 논의해야 할지조차 정하지 못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야당과, 새로운 국회 상설 연금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여당이 실랑이만 벌이고 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금개혁 성과는 점수로 평가하자면 마이너스 500점”이라며 “21대 국회 당시 여야가 모수개혁안에 합의했는데, 구조개혁을 이유로 연금개혁안 처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후 들고 나온 안이 세대별 차등 보험료 인상,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다. 이게 무슨 구조개혁안인가. 연금개혁 추진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질타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뒤늦게 정부 개혁안을 낸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연금개혁안 발표 뒤 후속 조치는 부족해 보인다. 개혁안을 냈으면, 야당이 제기하는 논점(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에 대해 실질적인 대답을 내놓아 다음 단계로의 논의를 이끌어야 하는데, 책임 있게 진행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