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있는 시장, 실용적인 시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신 있는 시장, 실용적인 시장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사승인 2018-06-28 15:10:46

이재준 고양시장 당선인께.

요즘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좋은 시정을 펼치기 위한 준비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당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평소 준비해온 정책과 선거과정에서 내놓은 공약들을 정리하고 다듬느라 고뇌하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평소 꿈꿔온 일이고 힘들게 쟁취한 자리인 만큼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당선인에게 편지글을 쓰기에 앞서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직 취임식도 하지 않은 당선인에게 시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마뜩찮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호기롭게 임기를 시작하려는 당선인의 발목을 잡는 식으로 비치지 않을까 저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거 이후 당선인이 보여준 일련의 행적, 특히 인수위원회 구성과 관련한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글이라도 쓰는 게 당선인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겹쳐서 용기를 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여론을 챙기고 있을 테지만 재차 확인하는 차원에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당선인이라는 호칭이 영 어색하네요. 불과 몇 시간 후면 떨어져 나갈 단어를 굳이 쓰는 게 되레 이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호칭에서 당선인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시장은 지금 고양시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 시장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전형적인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고양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104만 시민의 열망이 오직 이 시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 시장이야말로 그럴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구성된 이 시장의 인수위원회 위원 명단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의 마음은 다소간 흔들렸습니다. 기대에 어긋난 것은 물론이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적 구성이었던 것이죠.

인수위 구성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 시장이 뭔가에 코가 꿰였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원장에서부터 위원들 대부분이 대가성이거나 외부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던 거죠.

명단을 대충만 훑어 봐도 지역 국회의원들의 보좌관·비서관에다 특정 단체나 지역언론 관계자들, 기업인들이 즐비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인수위의 분과위별로 봐도 전문성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있는 인사들로 포진돼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결국 사달이 났죠. 지역 시민단체 대표가 강득구 인수위원장 위촉에 대가성 의혹을 제기하면서 선관위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양시 공직사회도 술렁였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서 보고한들 인수위에서 제대로 알아듣기나 할까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특히 인수위에 속한 한 시민단체 대표를 비롯한 2~3명에 대해서는 대놓고 부적격자로 성토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지역 국회의원실에서 추천된 한 인수위원이 성범죄로 공직에서 물러난 인사라는 의혹이 나온 거죠. 이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말썽을 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국회의원도 비난이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죠.

이 시장 입장에서는 인수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대충 넘길 수도 있을 겁니다. 대통령도 아니고 기초단체장 인수위는 어차피 인적 역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 다른 지역 기초단체장들의 인수위를 봐도 고만고만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곳에 자문을 구한 결과 인수위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인수위 보고서는 고양시정이라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와 같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겠죠.

이런 맥락에서 이 시장에게 간곡하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고양시를 이끌어가면서 주위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인수위 구성을 보면 주위에 휘둘린 흔적이 역력합니다. 물론 공천을 위한 당내 경선과 지방선거 과정 등에서 이런저런 관계로 엮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시정 방향이나 철학이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재차 말하지만 시민들의 이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믿음이 굳습니다. 많은 시민들은 재선 경기도의원을 지내면서 내놓은 이 시장의 활동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서 화정터미널 6:30’을 읽고 상당한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재준하면 곧바로 백팩(등가방)을 메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래서 오직 시민만을 바라보고 앞으로 4년간 시정을 펼쳐 주십사 당부합니다. 소신을 갖고 떳떳하게 고양시를 이끌어 주십사 당부합니다. 누구보다 잘하고 좋은 시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믿습니다. 이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를 낮추고 믿음을 약화시키지 말기를 진심으로 고대합니다.

지난번 민주당 후보 경선 막바지에 이 시장이 탈락한 최성 시장의 캠프를 접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온 뒤 꼼수 그리고 묘수(妙手)와 악수(惡手)’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그때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그 소식을 접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재준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념을 초월해 실용적인 시정을 펼쳐 달라는 겁니다. 이번 인수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이 시장의 이념 스펙트럼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시민운동가인 벤자민 바버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한 강연에서 자치단체장은 실용주의자이며 문제해결자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지도자에게는 이념과 거대 담론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단체장은 지역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그는 몇 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시장은 대통령이나 총리와 달리 Homeboy처럼 친숙한 친구가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보니 주제넘게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기자이기 전에 30여 년 동안 고양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그리고 고양시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주민으로서 절박한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힘내십시오. 이재준 시장, 파이팅!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정수익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