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명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을 주제로 여러 편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타인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각자의 사정을 품고 산다. 그럼에도 가족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영화 전체에 녹아 있어 편안한 미소와 함께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가족’은 조금 다르다.
‘어느 가족’의 원제는 ‘만바키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만바키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을 통해 가난을 극복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어느 날 밤 집으로 향하던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 부부는 우연히 부모도 없이 홀로 떨고 있는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발견한다. 유리를 모른 척할 수 없는 부부는 고민 끝에 그녀를 집에 데려와 함께 밥을 먹는다.
다음날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지만 유리 부모의 싸움을 목격하고 생각을 바꾼다. 유리의 엄마가 “나도 걔를 낳고 싶은 생각 따위 없었다”고 소리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유리도 원래 집이 아닌 새로운 집에 계속 있고 싶어 한다. 그렇게 유리의 선택에 의해 그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어 간다. 알고 보면 다섯 명의 가족 중 피가 섞인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어느 가족’은 기존 가족들의 생활에 합류한 유리를 이질적인 아이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들은 가족이 된다. 가족들의 사연이 하나씩 공개되지만 그 무엇도 가족의 유대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이 가족의 생활은 예상치 못한 작은 사건 하나로 완전히 부서지게 된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시작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이야기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다마을 다이어리’를 통해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어 갔다. ‘어느 가족’도 같은 주제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추가로 전개된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가족 내부에서 교차하던 평화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가족 외부의 시선을 통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재해석된다. 대안가족이란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에 밀어 넣자, 잔인하지만 선명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완성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을 열심히 챙겨본 관객들에겐 선물 같은 영화다. 감독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다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중간 중간 등장한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지난 10년 동안 생각해온 것을 모두 담은 영화”라는 감독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다섯 번 도전한 끝에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의미도 남다르다.
늘 그렇듯 아역부터 할머니 역까지 모든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엄마 노부요 역할을 맡은 배우 안도 사쿠라는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 끌 명연기를 펼친다. 오는 26일 개봉. 15세 관람가.